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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한웅 IBS 단장 “연구 우수성은 정부가 정하는 것 아냐”
“근본적 고민 필요…과학기술 정책자문 틀 만들어져야”
송영민 카이스트 교수 “정책은 지속이 중요…일관성 필요”
이재명 대통령이 7일 대전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을 방문해 세계 최초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인 KSTAR(Korea Superconducting Tokamak Advanced Research) 시설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지난 7일 발표한 인재정책 및 연구개발(R&D) 혁신 방안에 대해 과학기술계에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R&D 과제 성공률 90%’에 대해 실질적 근거가 없다는 비판과 함께, 근본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염한웅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자제어 저차원 전자계 연구단장(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은 9일 “대통령이 나서서 우리나라 R&D 과제 성공률이 90%가 넘는다는 가짜뉴스를 전달하고 정책도 이를 의식하여 만들어지면 결코 발전적 정책이 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7일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린 과학기술 정책 국민보고회에 참석해 “대한민국에서는 R&D 성공률이 90%를 넘는다고 한다”며 결과가 보장되는 무난한 연구에만 매달려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한국 연구자들이 연구과제 수주를 위해 실패하지 않는 연구에만 몰두한다는 것이다.

염 단장은 “R&D과제의 성공률이라는 데이터 자체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며 “과기자문회의 부의장을 5년간 지내며 관련 부처를 확인한 것”이라며 지적했다. 그는 “언젠가 국회 질의과정에서 나온 내용이 잘못 해석돼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가 세간에 나돌았는데, 연구과제를 성공·실패로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애초에 존재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는 이 대통령이 언급한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염 단장은 “실패로 평가되지 않기 위해 쉬운 과제만 한다고 매도하는 것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평가”라며 “이를 토대로 한 정책은 적절한 정책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현재 평가제가 정량평가라는 정부 발표와 달리 등급을 정성평가를 통해 주는 방식인 만큼 정량평가가 쉬운 연구를 조장한다는 근거가 없다고도 지적했다.

염 단장은 이번 대책에 대해 “많은 부분에서 동의가 되는 내용이고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빼놓지 않고 다루려는 노력이 보인다”면서도 “가짜 정보를 대통령이 퍼뜨리게 되는 것은 이를 적절하게 조언하는 참모들이나 자문기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하루빨리 제대로 된 과학기술 정책자문의 틀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물리학 분야 석학인 염 단장은 박근혜 정부 자문회의 위원을 거쳐 문재인 정부 5년간 부의장을 지내며 과기정책 설계에도 참여해왔다.

송영민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는 “연구자 자율성 강화, 장기적 인재 육성, 국가과학자 신설 등에서 고무적인 부분이 많다”면서도 “이러한 변화를 이번 정부의 공로로 남기기 위한 일회성 정책으로 만든다면 차라리 바꾸지 않는 편이 낫다”고 정부 정책의 변화보다 지속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바뀌는 정권마다 연구과제 규모, 예산, 지원 기간, 장학금 정책을 임의로 바꾸며 연구자 개인의 생애 설계와 미래를 뒤흔들었고, 이것이 연구자들이 장기적 목표보다는 ‘당장 가능한 과제에 매달리는’ 방어적 연구 문화를 낳았다는 진단이다.

그는 예시로 국가과학자 정책을 들며 “향후 5년간 매년 20명씩 선발하겠다고 선언했는데 5년 뒤 중단되면 국가과학자의 상징적 권위는 즉시 무너질 것”이라며 “그 직함을 가진 사람들은 ‘운이 좋았거나 이번 정부에 잘 연결된 사람’으로 평가받게 된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앞선 국가과학자를 표방한 국가석학 제도도 4년간 운영하다 멈춘 바 있다. 그는 “정부가 신뢰를 확보한다면 연구자들은 그 자격을 얻기 위해 진정한 성취와 도전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학기술의 세계에서는 새로운 시도가 언제나 필요하지만, 제도는 실험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정부가 정말로 연구 생태계를 혁신하고자 한다면, ‘이번에 바꾼다면, 앞으로는 바꾸지 않겠다’는 약속을 명문화해야 한다. 특히 연구자 생애주기 직결 정책은 최소 10년 이상 일관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