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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학 시절인 2012년 무렵, 내가 거주하던 버클리에서는 ‘Google Self-Driving Car’(구글의 자율주행차)라는 문구가 붙은 프리우스가 가끔 눈에 띄었다. 당시에도 자율주행은 먼 미래의 연구 과제가 아니라, 곧 현실화될 기술로 받아들여졌다. 실리콘밸리의 기술자들은 이미 “운전대를 언제 내려놓을 수 있을까”를 논의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웨이모는 샌프란시스코, 피닉스 등에서 하루 3만 5천 회 이상의 유료 운행을 수행한다. 바이두의 아폴로 고(Apollo Go) 등을 포함하면 전 세계적으로 매일 수만 건의 무인 주행이 상업적으로 이뤄진다. 자율주행은 더 이상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도심 교통의 일부다.

물론, 이 ‘코드화된 신뢰’는 냉혹하다. 캘리포니아 차량관리국(DMV)이 2023년 10월 크루즈의 운행 허가를 즉시 중단시킨 사건이 그 증거다. 다른 차량에 치인 보행자를 덮친 뒤 멈추지 않고, 도로변으로 이동하며 약 6미터를 끌고 간 ‘코드의 결함'도 문제였지만, 결정타는 ‘회사가 이 사고 영상을 규제 당국에 고의로 은폐'하려 했다는 '인간의 결함'이었다. 기술적 실패 보다, 그 실패를 다루는 인간의 방식이 시스템 전체의 신뢰를 파괴하며 기업 가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한 것이다.

크루즈가 ‘신뢰의 파괴'를 보여준다면, 웨이모의 상업적 확장은 ‘신뢰의 구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이 새로운 신뢰의 가치는, 가격에 대한 사람들의 뜻밖의 반응에서 드러난다.

“로봇이니 싸겠지”라는 초기 예상과 달리, 현재 웨이모의 요금은 우버보다 비쌀 때가 많다. 그럼에도 승객이 지갑을 여는 이유는 팁이 없고, 무엇보다 비 오는 금요일 밤의 ‘따따블' 할증이 없기 때문이다. 이용자는 싼 비용이 아닌, 이 ‘예측 가능한 일관성이라는 기계적 신뢰에 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핵심은 가격표 자체가 아니라, 그 가격이 보장하는 일관성이다.

우리는 평소 암묵적인 신뢰망 속에서 이동한다. 택시기사의 운전 실력, 신호체계의 정확성 등. 자율주행은 이 인간적 신뢰를 코드와 데이터로 재현하려는 시도다. 웨이모가 매일 수백 테라바이트의 데이터를 학습하고 시뮬레이션하는 것은, 인간의 감각을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신뢰를 네트워크 수준으로 확장하는 작업이다.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신뢰의 단위는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 된다. 인공지능이 학습한 수십억 건의 주행 데이터는 한 명의 베테랑 드라이버가 아니라, ‘집단적 경험의 통계'로 작동한다. 자율주행이 설계하는 것은 인간을 대체하는 지능이 아니라, 신뢰를 통계화한 인프라다.

한국도 이 냉엄한 현실 위에 서 있다. 정부가 2027년 레벨4 상용화를 목표로 추진하는 안전검증센터, 운행 데이터 표준화, 보험 책임 주체 명확화는 단순한 기술 허가가 아니다. 이는 크루즈 사태에서 보았듯,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기술적 신뢰를 뒷받침할 ‘새로운 사회적 규칙'을 만드는 과정이다.

기술은 신뢰의 문법을 다른 형태로 번역한 것이다. 전통적 신뢰가 ‘개인 대 개인'의 관계였다면, 자율주행이 설계하는 신뢰는 '네트워크 대 사람'의 구조다.

여기서 진짜 충돌이 발생한다. 크루즈의 추락은 이 새로운 신뢰 문법을 기존의 사회 시스템(법률, 규제, 여론)이 어떻게 거부하는지 보여준 사건이다. 결국 이 실험의 성패는 코드가 인간을 얼마나 닮았는지가 아니라, 이 기계적 신뢰의 실패를 제도가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에 달려있다.

채백련 전 빅웨이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