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775514_001_20251110070212957.jpg?type=w800

AI의 일자리 대체 양상
2023년 7월, 미국작가조합 조합원과 배우들이 인공지능 사용 이슈를 놓고 파업 중 뉴욕에서 피켓 시위를 벌였다. 영화나 드라마 작가 등 예술 분야에서도 기존에 보조 작가가 해온 주요 업무를 생성형 인공지능이 대체하면서 청년 신입 고용 감소가 현실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UPI 미국에서 인공지능발 대량 해고가 속출하면서 일자리 대체에 대한 불안이 현실화하고 있다. 아마존이 전체 인원의 10%인 약 3만명의 본사 인력 감원을 발표하는 등 글로벌 기술대기업에서 약 10만명 감원이 진행 중으로 보도된다. 한국도 인공지능 전환을 시도한 주요 대기업에서 신규채용을 줄이거나 아예 없애는 등 청년 일자리 위기가 현실화하는 양상이다.

최근 한국은행은 인공지능에 많이 노출된 업종에서 청년고용이 현저히 감소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인공지능 고속도로 구축을 강조하며 인공지능 3대 강국을 향해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향후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 현실로 나타난 청년 고용 위기

인공지능발 일자리 충격은 청년층에게 집중되는 추세다. 한국에서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가 본격화된 2022년부터 2025년까지 3년 동안 청년층 일자리는 21만 1천개 감소했고, 그 중 대부분인 20만 8천개가 인공지능 고노출 업종에서 발생했다. 반면 50대 일자리는 20만 9천개 증가했는데, 그 중 70%인 14만 6천개가 인공지능 고노출 업종이었다. 지난달 30일 한국은행이 국민연금 가입자 수 분석을 통해 발표한 ‘AI 확산과 청년고용 위축’ 보고서에 담긴 분석 결과다.

이 같은 ‘연공편향적 기술발전’은 미국 등 인공지능 활용이 활발한 나라에서 비슷하게 나타난다. 에릭 브린욜프슨 스탠퍼드대 교수진의 연구에 따르면 인공지능에 많이 노출된 산업에서 22~25세 고용이 13% 감소했고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자 청년층에서는 20% 가까이 감소했다. 지난 7월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보고서, 2025세계경제포럼보고서도 사무 보조 업무를 수행하는 청년·입문층 일자리 타격이 두드러져, 연령 간 격차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인공지능의 충격이 청년층에게 집중된 것은, 그동안 저연차 노동자가 수행해온 정형화된 지식 업무일수록 생성형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미 생성형 인공지능은 문서 정리, 보고서 요약, 이메일 작성, 기본 코딩, 고객 지원 등 다양한 층위에서 일상적인 사무업무를 자동화하고 있다.

반면 오랜 경력으로 숙련을 쌓은 시니어들은 인공지능이 업무를 보완해 생산성이 증가하고 고용도 탄탄해지고 있다. 맥락 이해, 대인관계, 조직관리 등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어려운 암묵적 지식을 통해 복잡하고 불확실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인공지능 시대 부각되고 있는 셈이다.

■ 전문직·예술 직종으로 확산

생성형 인공지능의 충격은 단순 사무직에 그치지 않는다, 변호사, 드라마 작가 등 전문직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계약서 리뷰, 서면 초안 작성, 법률 리서치, 국제 판례 검색 등 저연차 변호사들이 수행해온 과업이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자동화되면서 채용이 크게 줄고 있다. 영국의 인공지능 전문가 대니얼 서스킨드가 저서 ‘전문직의 미래’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통적 전문가가 처리하던 복합 업무는 분해되어, 기초적·반복적·표준화 작업은 인공지능이 대체하고 인간 전문가는 문제해결, 창의적 해석, 고난이도 전략, 윤리적 사안에 집중하는 양상이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나 드라마 작가 등 예술 분야에서도 청년 일자리 감소가 현실화하고 있다. 기존에 보조 작가가 해왔던 초안 생성, 기본적 대화와 플롯 수립 등을 생성형 인공지능이 맡고 경력이 풍부한 작가들이 이를 토대로 작업하는 역할 분담이 확산하고 있다.

■ AI와 인간 협력하는 정책 설계

한편 남성보다 여성이 인공지능의 충격에 더 취약하다는 분석 결과도 눈길을 끈다. 유엔국제노동기구(ILO)의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고용의 25%가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인한 자동화에 잠재적으로 노출되어 있으며, 특히 인공지능의 영향이 큰 고소득 국가의 경우, 여성 고용의 9.6%가 매우 위험한 반면 남성은 3.5%에 불과했다. 단순사무직 등 여성 노동자가 많은 직종에서 자동화 가능성이 높아, 남성 대비 실직 위험이 3배에 이른다는 것이다. 기술발전이 연령편향적, 성별편향적으로 작용하면서, 이같은 추세가 확산될 경우 경제활동참여, 사회적 영향력 등 여러 측면에서 격차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흥미로운 것은 인공지능에 많이 노출된 업종이라도 보완·협력이 가능하다면, 청년 고용 감소 폭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점이다. 예컨대 보건업, 교육서비스업, 디자인 등 인공지능을 협업과 창의성을 위한 보조도구로 쓰는 곳에서는 청년고용이 감소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신입·저숙련자가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생산성이 급상승한다는 점도 여러 국가에서 공통으로 확인된다. 즉, 진입은 어렵지만 일단 들어오면 저연차일수록 인공지능 보완 효과가 커서 빨리 성장한다는 의미다.

인공지능으로 인한 청년·여성 일자리 대체는 기술의 필연적 결과가 아니며, 자동화 중심 설계를 선택한 결과다. 따라서 인공지능과 사람이 서로 협업하고 보완할 수 있는 경로로 정책 설계를 변경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제 독일 지멘스 등 일부 제조 현장에서는 반복적 생산·품질검사·설비 점검은 인공지능이 맡고, 청년 등 신규 인력은 설비 최적화·현장 문제해결 등 관계 중심적, 문제해결 역할에 집중하도록 업무를 재설계해 청년 신규 채용이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