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 부처와 협력사업을 하더라도, 우리 부처가 해당 분야를 지속적으로 해왔으니 우리가 주도권을 잡아야 됩니다. 타 부처에서 들어오는 협력 프로젝트는 당분간은 진행하기 어렵습니다."(B부처 공무원)
"정부와 금융기관의 데이터를 통합해 AI서비스를 연구하려는데, 여전히 모든 데이터는 각각 받아야 하고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여부도 일일이 개인정보위에 따로 확인받아야 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C대학 연구원)
지난 10월 임문영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상근부위원장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 김정관 산업부 장관,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산업 전반의 성공적 AX 확산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AI 핵심 기술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제조·산업 분야의 AI 대전환에 나서기로 하고, 범정부 차원의 AI 생태계 통합과 공공 데이터 민간 공유를 협력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정부 부처 내 일하는 방식을 바꿔 하드웨어·소프트웨어·서비스·디자인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새로운 AI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업들을 지원·육성하기 위해 칸막이를 걷어내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실제 AI 정책과 산업 현장에는 아직 장관님들의 협력 선언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모양새다.
일부 공무원 사이에서는 "과거부터 해당분야를 관할하지 않던 부처는 현장을 모르기 때문에 통합사업을 함께하기 어렵다"거나 "특정부처로 개발 예산이 집중돼 오히려 기업 지원은 더 어려워졌다" 같은 협업에 대한 불편한 목소리들이 나온다. 부처 간 다툼의 모양새도 보인다. 관가의 분위기가 이렇게 흐리니, AI 현장에서는 혼란이 더 커졌다는 볼멘소리도 하나둘 늘어난다.
이쯤되면 그동안 AI산업 발전의 걸림돌로 지적된 그래픽처리장치(GPU) 부족이나 데이터센터 미비 같은 기술적 난관보다 정부 부처 내부 관행과 책임 회피가 AI 3강을 어렵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고, 서둘러 치료해야 할 대상 아닐까 싶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일찌감치 인식했으니 범부처 컨트롤타워인 국가AI전략위원회를 만들고 과기정통부를 부총리 부처로 격상시키는 정부조직 개선을 먼저 시작했을 게다. 그런데 역시 악마는 디테일에 있었다. 장관들의 업무협약 선언이 실무 현장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부 각 부처들은 장관들의 협업 선언을 실무 공무원들에게 명확히 전달하고 이행하도록 시스템을 서둘러 정비했으면 한다. 부처 간 협업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실무 레벨까지 명확히 내려보내야 한다. 장관급 선언만으로는 현장의 실무자가 움직일 이유가 없다. 그러니 성과와 책임을 실시간으로 점검하는 통합관리시스템을 운영했으면 한다. AI시대의 공공데이터 민간 공유, AI협업 프로젝트 진행, 예산 집행을 투명하게 관리해 개별 부처 실무자가 스스로 칸막이를 허물어 낼 동력을 제공했으면 한다.
대한민국 어느 공무원이 AI 3강 정책을 거부하겠는가. 단지 아직 협업이 익숙지 않고, 협업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부처의 영역을 타 부처에 내줬다 업무공백이 생길까 두려워하는 것일 게다. 그렇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을 안 담그겠다고 버티는 것을 보고만 있으면 안 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내년도 예산안 관련 국회 시정연설에서 "AI 시대에는 하루가 늦으면 한 세대가 뒤처진다"며 AI 속도전을 강조했다. 한시가 급하다. 하루라도 빨리 지난 10월 주요부처 장관들이 약속한 부처 간 협업의지를 실제 AI사업과 서비스 개발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확산할 실무 방안을 만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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