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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주식 전량 매각…올해 오픈AI에 300억弗 투자

손정의 “단순 차익 실현 아냐
다음 세대 위한 자본 재배치”
AI칩 대신 AI인프라에 베팅

더 가까워진 손정의·올트먼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집중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왼쪽)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행사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소프트뱅크그룹이 인공지능(AI) 반도체 대장주인 엔비디아 지분 전량을 매각하고, 그 자금을 챗GPT 개발사인 오픈AI(OpenAI)에 투입하기로 했다. AI 거품론이 커지는 가운데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다시 한번 ‘AI 올인’ 전략에 나서며 그 배경이 주목된다. 하드웨어인 반도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인 AI 생태계 인프라스트럭처 구축과 모델 개발로 투자의 무게중심을 옮기려는 손 회장의 결단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소프트뱅크는 지난 11일(현지시간) 실적 발표에서 지난달 보유 중이던 엔비디아 주식 3210만주를 58억달러(약 8조원)에 모두 처분했다고 밝혔다. 확보한 자금은 오픈AI에 대한 300억달러 규모 투자 약정과 미국 내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에 투입된다. 손 회장은 “이번 매각은 단순한 차익 실현이 아니라 다음 세대 AI 가치 창출을 위한 자본 재배치”라고 설명했다.

미국 텍사스주 애빌린에 지어지고 있는 스타게이트 데이터센터 [사진=오픈AI]매각 시점은 절묘했다. 엔비디아가 올해 10월 세계 최초로 시가총액 5조달러를 돌파하며 AI 주식 랠리가 정점을 찍은 직후였기 때문이다. 월가에서 ‘AI 버블(거품)’ 우려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소프트뱅크의 전량 매각은 과열된 시장을 의식한 신호로 해석됐다.

실제로 엔비디아 주가는 이날 약 3% 하락했다. 영국 투자사 AJ벨의 러스 몰드 이사는 “투자자들은 기술주 상승세가 정점에 다다랐는지 신호를 찾고 있다”며 “기업 가치가 과도하다고 보이거나, 더 유망한 투자처가 등장할 때 자금은 이동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손 회장이 엔비디아 주가가 고점에 이르렀다고 보고 매도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요시미쓰 고토 소프트뱅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오픈AI에 대한 투자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기존 자산을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며 “이번 매각은 투자 순환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AI 버블 여부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지만, 투자하지 않는 위험이 투자하는 위험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 소프트뱅크의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손 회장은 AI의 가치 창출이 칩 제조보다 인프라 구축과 모델 개발로 옮겨 가고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돈을 버는 기업(엔비디아)의 지분을 팔고 아직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오픈AI)에 자본을 집중하는 그의 선택은 일견 위험해 보이지만, 손 회장은 오픈AI가 장기적으로 엔비디아를 능가할 잠재력이 있다고 본 것이다.

현재 그는 오픈AI, 오라클과 함께 5000억달러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를 추진 중이다. 스타게이트의 첫 번째 시설은 미국 텍사스주 애빌린에서 이미 가동에 들어갔다. 소프트뱅크는 이 프로젝트와 오픈AI 투자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현금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엔비디아 지분 매각 외에도 지난여름 T모바일 주식 91억달러어치를 팔았으며, 도이치텔레콤 지분 매각으로 23억달러를 추가로 확보했다. 또 반도체 설계사 암(Arm) 지분을 담보로 대출 한도를 늘리고 채권 발행을 통해 수십억 달러를 조달했다.

따라서 시장에서는 이번 결정을 ‘21세기판 손정의식 올인’으로 보기도 한다. 그는 2000년대 초 알리바바 초기 투자로 대성공을 거뒀지만, 위워크 투자 실패와 2019년 엔비디아 조기 매각으로 뼈아픈 경험도 남겼다. 이번 결정은 그가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고 다시 한번 기술 전환의 정점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MST파이낸셜의 데이비드 깁슨 애널리스트는 “소프트뱅크는 보유 자산을 처분해 오픈AI 투자금을 마련하고 있다”며 “이는 손 회장이 AI의 장기 성장세에 모든 것을 걸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미국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더 인포메이션은 “손 회장이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와의 투자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소파 쿠션 속 동전’까지 긁어모으고 있다”며 “그는 언제나 자산을 칩처럼 옮겨 큰 판을 만들어 왔다”고 평가했다.

오픈AI의 기업가치는 지난해 1570억달러에서 현재 5000억달러로 치솟았다.

소프트뱅크는 올해 들어 오픈AI 투자에 적극 나섰다. 지난 3월에는 오픈AI의 기업가치를 3000억달러로 평가한 대규모 투자라운드를 주도했고, 10월에는 오픈AI 내부 직원들이 보유한 지분을 사들이는 거래에도 참여했다. 올해 말까지 소프트뱅크의 오픈AI 누적 투자액은 347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손 회장은 “AI는 아직 과소평가된 기술”이라며 “이번 승부는 단기 수익이 아니라 인류의 산업 지형을 바꾸는 장기 투자”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