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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램 품귀에···빅테크 1년치 입도선매
공장 증설해도 생산에 2년 걸려
시장 수요 맞추기보다 속도조절
최태원(왼쪽)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달 31일 경북 경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환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공급을 당장 늘릴 방법이 없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3일 SK텔레콤이 개최한 ‘2025 인공지능(AI) 서밋’에서 이같이 밝히며 최근 반도체 D램 시장에서 벌어지는 ‘패닉바잉(Panic buying)’ 상황을 짚었다.

글로벌 빅테크들은 검색 결과를 제시하는 대규모언어모델(LLM)에서 추론형 AI모델, 로봇의 두뇌 역할을 할 피지컬 AI 등을 선점하려 천문학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는 AI 산업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 5000억 달러(약 730조 원)를 투자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돌입했고,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메타도 600억 달러(87조 원)를 AI 인프라 구축에 투입하기로 했다.

AI 혁명이 가속화하자 세계 양대 메모리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에 D램 주문은 폭주하고 있다. 엔비디아 등의 AI 가속기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 1개 가격이 수백 달러를 상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HBM뿐 아니라 범용 D램의 수요 역시 최근 폭증하며 가격이 치솟고 있다. 더블데이터레이트(DDR) 제품 성능이 갈수록 고도화하고 스마트폰용으로 사용되던 저전력(LP)DDR 등이 데이터센터에 적용돼 수요가 확산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반도체 공급을 늘리는 것은 항상 타임래그(Time lag·시차)가 필요하다”는 최 회장의 말처럼 메모리 기업들이 시장 수요에 맞춰 공급을 빠르게 늘리기는 어렵다. SK하이닉스의 청주 M15 공장을 확장한 M15X나 삼성전자의 평택 P4(4공장)는 HBM 생산 중심으로 설계돼 범용 D램 생산을 크게 늘리는 것이 쉽지 않은 형편이다.

메모리 기업들이 당장 D램 생산 시설 투자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도 D램 가격 급등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당장 D램 설비 증설에 나서도 생산까지는 2년이 걸리는 만큼 메모리 기업들로서는 자칫 수십조 원의 투자에 나섰다 슈퍼사이클이 끝나고 가격이 폭락하는 ‘겨울’을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17일 용산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재계 총수 간 회동에서 향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600조 원이 투입될 수 있다고 했지만 “수요에 맞춰 현명하게 투자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내년 D램 물량이 모두 팔리자 2027년 물량 공급을 위한 협상에 돌입했다. SK하이닉스의 D램이 품절되자 빅테크들은 삼성전자로 몰리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도 내년 물량 대부분의 공급계약이 끝난 상태다. 수요가 계속 늘자 삼성전자는 일부 D램 공급가를 60%가량 인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공급을 늘릴 방법은 생산 수율을 높이는 것뿐”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