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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월드·카본식스·테솔로 등 '지능형 로봇핸드' 개발 각축
휴머노이드 실현 위한 최초 관문
픽앤플레이스·조립 등 활용 기대
스타트업 위주 RFM 고도화 나서
제조 현장서 데이터 확보 속도전
손 동작 학습 등 '지능화'에 사활
카본식스의 '시그마키트'가 전자 제품을 조립하고 있다. 사진 제공=카본식스
[서울경제]

챗GPT·제미나이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은 기업들의 업무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사무실에 앉아 프롬프트 한 줄만 입력하면 프리젠테이션 자료가 자동으로 완성되고, 방대한 시장 분석 보고서가 순식간에 만들어진다. 과거에는 여러 인력이 며칠씩 붙잡고 있던 사무 작업이 이제는 단 몇 분이면 해결된다. 이른바 사무 업무 자동화를 통한 지식 노동의 혁신이 본격화됐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기업들은 제한된 인력으로 더 많은 일을 처리하고 직원들은 반복 업무에서 벗어나 보다 고도화된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변화는 '피지컬 AI'라는 이름으로 사무실을 넘어 제조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생성형 AI가 사무실에서 이뤄지는 업무를 혁신했다면, 피지컬 AI는 물리 세계, 즉 제조 현장의 완전 지능화와 자동화를 목표로 한다. 생성형 AI 기술이 단순히 언어 모델을 넘어 실제 물리 모델로 적용된다는 점에서 우리가 상상하던 지시에 따라 사람처럼 움직이는 휴머노이드 로봇 등장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대표는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 기조연설에서 "로봇 분야에서도 곧 챗GPT와 같은 결정적 전환점이 찾아올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로봇 업계에서는 피지컬 AI를 실현하기 위한 첫 관문이 지능형 로봇핸드 개발이라고 보고 있다. 로봇핸드에 AI와 센서, 액추에이터 등을 결합하면, 기존 사람만이 수행할 수 있었던 섬세한 작업을 로봇이 대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조립 과정에 소형 반도체 같은 작은 부품을 부착하는 공정은 사람만이 할 수 있었는데, 곧 로봇핸드로 대체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피지컬 AI의 ‘연료’는 로봇핸드로 수집한 데이터



국내에서 AI 기반 로봇핸드 시장에 도전하고 있는 기업으로는 리얼월드, 카본식스, 테솔로, 에이딘로보틱스 등이 있다. 아직 로봇핸드 시장이 무르익지 않은 만큼 스타트업들을 중심으로 기술 고도화를 진행 중이며, 제조 분야 대기업들과의 협력을 통한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로봇핸드를 제조 현장에 적용해 RFM 기술 개발을 위한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고자유도 로봇핸드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등 기업마다 도전 과정은 다르지만 모두 피지컬 AI 시대의 핵심 기반 기술을 선점하겠다는 목표는 같다.

카본식스와 리얼월드가 로봇핸드 상용화에 나선 목적은 제조 현장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대규모언어모델(LLM) 기반 생성형 AI의 경우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함으로써 비교적 손쉽게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었지만, 피지컬 AI 분야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제조 현장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데이터는 공개된 자료가 거의 없고, 핵심 데이터 대부분을 현장에서 장기간 직접 수집해야만 확보할 수 있다. 또 언어 데이터뿐 아니라 영상·음성·동작·힘 등 다차원·고용량의 데이터를 확보해야 하는 것도 난제 중 하나로 꼽힌다.

이렇듯 데이터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로봇핸드를 통해 확보한 제조 현장 데이터의 퀄리티와 규모는 피지컬 AI 시대의 핵심 경쟁력이 될 전망이다. 가장 많은 제조 현장 데이터를 확보한 기업일수록 고도화된 피지컬 AI를 구현할 수 있고, 기술 패권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서형주 카본식스 최고기술책임자(CTO)는 "테슬라는 전기차를 판매함으로써 방대한 자율주행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고,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구현해 냈다"면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카본식스는 로봇핸드를 빠르게 상용화함으로써 제조 현장 데이터를 수집하고, 확보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도화된 피지컬 AI를 구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얼월드도 로봇핸드를 통한 데이터 확보에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류중희 리얼월드 대표는 "RFM 같은 AI 모델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데이터"라며 "리얼월드 역시 산업 현장에서 나오는 초대형 규모의 데이터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모을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론을 계속해서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테솔로의 'DG-5F' 로봇핸드. 사진 제공=테솔로



집게형 2지부터 사람 손 닮은 5지도 구현



로봇핸드는 공정에 따라 다른 형태로 구현되고 있다. 현재로서 가장 빠른 상용화가 예상되는 공정은 픽앤플레이스(Pick&Place)다.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이동하는 물건을 집고 다른 곳으로 옮기는 등의 공정을 로봇핸드가 대체하는 것이다. 완성된 전자제품을 포장 패키지로 옮기는 등의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물건을 적재하거나 정리하는 작업이 많은 편의점이나 대형 마트에서의 활용도도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로봇핸드 업계에서는 이러한 픽앤플레이스 공정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는 2지(두 손가락)와 3지(세 손가락)를 꼽는다. 5지(다섯 손가락) 형태로 해당 공정을 구현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효율성을 고려하면 2지와 3지 로봇핸드로도 충분하다는 판단에서다. 김영진 테솔로 대표는 "사람 손을 똑같이 모방할 수 있는 RFM을 개발하기 위해선 5지 로봇핸드를 통해 얻은 데이터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의 제조 공정에서는 굳이 5지까지 필요한 경우는 많이 없다"면서 "테솔로는 3지로 할 수 있는 공정을 대상으로 우선적으로 제품을 공급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리얼월드는 현재 5지 형태의 로봇핸드 개발에 집중한다. 로봇핸드가 사람의 손 형태와 같은 5지 형태일 때 더욱 효율적으로 데이터를 모으고 학습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류중희 대표는 "우리는 사람의 손 동작을 그대로 학습시키기 때문에 5지 형태로 AI 기반 로봇핸드를 구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카본식스는 국내외 대·중견기업 수십곳과 계약을 맺으며 상용화 시기를 앞당기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당 고객사들은 카본식스의 로봇핸드인 '시그마키트'의 기술검증(PoC)을 마치고, 일부 제조 공정에 도입하는 시범 테스트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시그마키트는 2지 형태로 자유도(움직임의 자율성 수준)는 낮지만, 많은 제조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공정을 자동화하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문태연 카본식스 대표는 "2지 형태로 빠르게 제조 현장에 적용하고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향후 키트 형태로 제공해 필요한 공정에 따라 3지 혹은 5지 등 형태의 로봇핸드로 바꿔 끼울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완벽한 피지컬 AI 로봇핸드 탄생, 앞으로 3년"



로봇핸드의 최종 목표는 사람 손의 섬세한 움직임까지 모방해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사람 손과 형태가 유사한 5지 로봇핸드를 기준으로 15자유도 이상이면 대부분의 손동작을 따라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데, 현재는 20자유도 수준까지 구현이 가능한 단계에 와 있다. 김영진 대표는 “우리 로봇핸드는 20자유도인데, 세계 최고 수준의 자유도로 봐도 된다”면서 "나아가 각 관절의 독립된 움직임, 힘과 위치의 제어 등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높은 기술력을 인정 받아 이미 16개국에서 우리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하드웨어 기술력은 목표 수준에 상당히 근접했지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로봇핸드에 '지능'을 부여하는 RFM 역량이다. 아직 RFM은 전 세계적으로도 완성형 제품이 등장하지 않은 초기 단계다. 누가 먼저 상용화를 이루느냐가 글로벌 피지컬 AI 경쟁의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이를 위해 기업들은 제조 현장 데이터 확보부터 모델 학습, 실제 생산라인에서의 테스트까지 선순환 구조를 빠르게 구축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류 대표는 "챗GPT가 약 3년 전에 공개됐고, 지금에 와서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온 것처럼 피지컬 AI 기반 로봇핸드도 앞으로 3~5년 후에는 완벽하게 사람처럼 움직이는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