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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한양대에 기부, 소부장 인재 양성에 쓰일 예정
회사설립 7년만에 반도체 장비 국산화
“소부장 기술 뒤처진 건 인재 부족 탓”
“기부 재단 만들겠다”

2025년 11월 14일 경기도 성남시 PSK 판교캠퍼스. 인재 양성 위해 20억원 기부하는 반도체 장비 회사 피에스케이홀딩 박경수 회장이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지호 기자
한국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이 있다. 하지만 한국이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는 ASML, 램리서치 등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박경수(73) PSK 회장은 40년 가까이 회사를 운영하며 ‘애싱(감광액을 제거하는 공정)’ 장비 분야에서 PSK를 점유율 41%, 세계 1위로 올려놨다. 모두 인재 덕분이라는 것이 박 회장의 생각이다. PSK는 19일 고려대학교와 한양대학교에 총 20억원 규모의 발전 기금을 기부했다. 박 회장의 개인 기부 신탁 10억원과 PSK홀딩스의 10억원 출연으로 이뤄졌다. 박 회장은 한국에도 더 많은 소부장 강소 기업이 나오길 바라며 기부를 결심했다고 한다. 기부에 앞서 지난 14일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박 회장은 “좋은 인재가 있어야, 좋은 기술이 축적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처음에는 반도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1975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MBA를 받았다. 미륭건설(현 동부건설) 뉴욕 지사에서 근무하며 회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몬산토 웨이퍼(반도체 원판) 공장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반도체를 처음 알게 됐다. 반도체 분야 박사였던 여동생의 남편과 이야기하며 반도체의 미래가 유망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반도체 분야에 들어섰고 관련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1986년 차린 금영무역은 일본 반도체 장비 회사 PSC의 제품을 판매하는 일이었다. 국산화 욕심이 생겨 일본 회사 PSC와 합작한 PSK를 1990년 세우고 반도체 장비 산업에 본격 뛰어들었다.

회사 성장의 원동력은 인재들이었다. 국산화를 위해 일본 회사들에도 도움을 구했지만, 이들은 장비 근처에도 못 가게 했다. 기술을 전수해줄 생각도 전혀 없었다. 박 회장은 회사 내부에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연구소도 설립해 국산화 연구에 돌입했다. 전국 대학을 찾아 이공계 인재들을 끌어 모았다. 낮에는 일본 기업들의 무시 속에서도 기술을 배우려고 애를 썼다. 밤에는 대학 교수를 초청해 공부했다. 박 회장은 “일본에도 직원을 보내 교육시키고 국내 고객사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결국 회사 설립 7년 만에 국내 장비 업체로는 처음으로 국산화에 성공했다.

PSK 그룹(PSK 홀딩스·PSK)은 지금 임직원 442명, 매출은 6136억원 회사로 성장했다. 경기도 화성 제조 공장에서 장비를 생산하고 있으며, 한국을 포함한 7국에 영업, 서비스를 할 수 있는 해외 법인 25곳을 두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뿐 아니라 인텔, 마이크론 등 글로벌 주요 기업들이 고객사다.

박 회장은 회사가 어려울 때도 인재 관리를 계속했다. 반도체 산업은 사이클이 있어, 다운턴일 때는 일감이 없어 장비 업체들도 힘들었다. 박 회장은 “사람을 내보내면 기술이 끊긴다”며 “사람을 유지 관리하려고, 내부적으로 연구·개발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당시 작은 규모이지만 정부 프로젝트를 따서 인재 육성을 하고 실험을 계속했다. 박 회장은 “일본의 경우 반도체 다운턴일 때 투자를 안 하다 보니 소부장 산업도 함께 죽었다”고 했다. 실제 일본은 최근 들어 반도체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잃어버린 30년’ 동안 인재가 끊겨 인력 부족을 겪고 있다.


박 회장은 특히 소부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에 훌륭한 반도체 회사들이 발전하는 것에 비해서 소부장, 즉 후방 산업의 발전 속도는 굉장히 늦다”며 “결국 원인은 인재 부족”이라고 했다. 박 회장은 “대기업들은 인재를 구하기 쉬운 편이지만, 중소·중견 기업들은 좋은 인재들이 지원을 많이 안 해서 목마름이 큰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인재들이 대기업으로 먼저 가서 중소 기업들은 남은 인력 안에서 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은 의대 쏠림 현상으로 이공계 인재가 부족하고 해외로 이탈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박 회장이 기부를 결심한 이유다. 박 회장이 기부한 금액은 대학원에서 공부하려는 소부장 전문가들을 위해 쓰일 예정이다. 현장의 인력들에게 고등교육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PSK는 사내에서도 직원들의 대학원 비용을 자체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박 회장은 “이번 기부가 시작”이라고 했다. 그는 한 협력업체 행사에서 “이제 첫 단추를 꿰었으니 앞으로 많이 동참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별도의 기부 재단도 만들 생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