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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거품론 제압한 엔비디아
데이터센터 매출 66% 증가
4분기 매출 650억달러 전망
5000억불 선주문 깜짝 공개
블랙웰 발열 논란 일축하며
"클라우드 GPU는 이미 매진"
일각선 여전히 수익성 의문
분기 중국매출 '0'에 가깝고
AI 순환거래 구조도 우려




엔비디아가 19일(현지시간) 발표한 올해 3분기 실적은 최근 제기된 '인공지능(AI) 거품론'을 한 발 물러서게 하는 결과로 평가된다. 매출 570억달러, 영업이익 360억달러를 기록했고 올 4분기 매출 가이던스로 650억달러를 제시하며 AI 인프라 투자가 예상보다 견고하게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시장이 가장 주목한 분야는 데이터센터 부문이었다. 이 부문 매출은 512억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66% 증가해 전체의 약 90%를 차지했다. 일부 빅테크에 집중됐던 수요가 여러 대기업과 정부로 확대되면서 데이터센터 수요가 예상보다 탄탄하게 유지된 모습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몇 개 분기 안에 5000억달러 규모의 주문 잔고가 잡혀 있다"며 "자동차, 의료, 금융, 공공 등 전방위적으로 그래픽처리장치(GPU) 채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차세대 칩 '블랙웰' 생산 상황도 시장이 주목한 지점이었다. 발표 전 제기된 발열·설계 논란과 달리 황 CEO는 "블랙웰은 계획대로 대량 생산 중이며 클라우드 GPU는 이미 매진됐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 공급을 앞둔 '베라 루빈'도 차질 없이 준비되고 있다"며 강한 수요와 공급망 안정성을 강조했다.



AI 투자 수익화 논란도 이번 실적으로 일부 해소됐다는 평가다. 황 CEO는 "AI 모델이 단순 답변을 넘어 추론하고 생각하는 단계로 발전하며 컴퓨팅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챗봇, AI 코딩 툴 등 서비스형 AI가 본격 출시되며 실제 서비스 운영 과정에서 필요한 추론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의미다.

엔비디아 성장의 또 다른 축은 '소버린 AI'의 부상이다.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주요국 정부가 자체 AI 인프라 구축에 대규모로 투자하면서 기업 외에 새로운 수요가 형성되고 있다. 경기 사이클과 무관하게 집행되는 정부 주도형 투자는 엔비디아 실적의 안정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AI 데이터센터를 국가 전략 인프라로 육성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할수록 엔비디아의 중장기 수요 기반도 더 공고해질 전망이다.

황 CEO는 이날 "우리가 경험하는 성장은 실질적 수요와 실제 고객의 주문에 기반한다"며 "AI 시장은 거품이 아니라 기술적 전환의 초기 단계"라고 강조했다. "모든 산업이 AI를 도입하는 현장을 직접 보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번 실적은 AI 칩이 기술을 넘어 사실상 '전략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일본·사우디·UAE 등 각국이 엔비디아 칩 기반의 대규모 인프라 구축에 나서면서 엔비디아 기술은 외교·안보 영역에서도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황 CEO가 국제 무대에서 새로운 '전략적 동반자'로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AI 칩이 외교의 지렛대로 작용하면서 두 사람의 개인적 친분 역시 미국의 외교 전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로 한국을 방문해 연설에서 "젠슨이 여기 와 있을지 모르겠다. 그는 놀라운 사람"이라고 언급했고, 같은 날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한 황 CEO도 "백악관의 규제 완화가 AI 투자를 촉진하고 있다"고 말하며 화답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엔비디아가 미국 내 제조에 50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이후 더욱 가까워졌다. 황 CEO는 백악관에서 계획을 직접 발표했고, 이어진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순방에 동행해 사우디·UAE에 2000억달러 규모의 칩을 공급하는 협상을 성사했다.

AI 칩은 미국 외교에서도 새로운 협력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과거 원자력 기술을 '평화적 사용 조건'으로 제공하던 방식처럼, 분쟁 지역 국가에 AI 기술 협력을 제안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정전 합의 직후 AI 관련 협력 논의를 진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성장 경로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중국 수출 규제가 부분적으로 완화됐지만 분기 중국 매출은 사실상 '0'에 머물렀다. 엔비디아가 오픈AI나 코어위브 등에 투자하고 이들이 다시 엔비디아 GPU를 대량 구매하는 이른바 '순환형 투자' 구조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생태계 확장 전략이라는 평가가 있지만 실제 수요를 과대평가하거나 성장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적은 견고했지만 이러한 변수들은 앞으로도 엔비디아의 성장 전망을 둘러싼 쟁점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실리콘밸리 원호섭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