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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내외 불확실성에 사장 승진 최소화
반도체·세트 사업 ‘혁신 성장’ 주문
글로벌 석학 영입 ‘인재경영’ 드라이브
송규종 삼성물산·정해린 에스원 사장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사법리스크 완전 해소 후 나온 첫 정기 사장단 인사는 단연 ‘기술인재 중용’에 방점을 뒀다.

인공지능(AI) 기술이 전 세계 산업 구조를 빠르게 재편하는 상황에서 이재용 회장은 외부 기술인재까지 전격 영입하며 ‘기술의 삼성’을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동시에 양대 사업부문장에게 메모리사업부와 모바일사업부장을 겸직하도록 하면서 핵심 사업의 지속적인 경쟁력 강화도 주문했다.

향후 이어질 후속 임원 인사와 조직 개편도 AI 대전환의 물결 속에 반도체 사업 및 완제품(세트) 사업의 기술 경쟁력 강화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가 21일 발표한 2026년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보면 사장 승진자는 1명(윤장현 사장)에 그쳤다. 이는 ▷2023년 7명 ▷2024년 2명 ▷2025년 2명에 비해 줄어든 것으로 승진 인사를 예년보다 최소화한 것이 특징이다. 대내외 불확실성 속 조직 안정에 무게를 둔 것으로 해석된다.

▶전영현·노태문 사업부장 겸직, 사장 승진 최소화…‘안정’ 방점=이번 사장단 인사에서 삼성전자는 양대 사업부문의 핵심 사업부장에 대해 교체 대신 유임을 택하며 경영 안정을 도모했다.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대표이사 부회장)의 경우 메모리사업부장을 계속 겸임하도록 했다. 이로써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메모리사업부의 대표이사 직할체제’가 이어지게 됐다.

전 부회장이 메모리사업부장을 겸임한 지난 1년 동안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업의 ‘굴욕’을 씻고, 마침내 사업 정상화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에서 유임을 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반도체 산업이 ‘메모리 슈퍼사이클(초호황기)’ 진입을 눈 앞에 둔 점도 ‘전영현 체제’ 존속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보인다. 대신 전 부회장은 그동안 겸임하고 있던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 원장 자리를 박홍근 사장에게 물려주게 돼 ‘1인 다역’에서 비롯했던 업무과중 부담을 다소 덜게 됐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실적 회복이 일시적인 메모리 가격 상승에서 비롯됐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장기적인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 삼성전자 반도체가 본연의 실력을 찾는 것이 앞으로 ‘전영현 체제’의 주요 미션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인사로 전 부회장과 함께 삼성전자의 투톱 체제를 구축하게 된 노태문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사장) 역시 모바일경험(MX)사업부장을 계속 겸임한다. 가전과 TV, 스마트폰 사업을 모두 책임지는 DX부문장으로 올라선 만큼 MX사업부장직은 내려놓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지만 유임이 결정됐다.

노 부문장은 고(故) 한종희 부회장의 별세로 공석이 된 DX부문장 직무대행을 맡아 8개월 동안 조직을 추스르며 안정적으로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2020년부터 MX사업부를 이끌며 ‘갤럭시 신화’를 일궜던 그는 가전과 TV 사업에도 MX사업부의 경험을 이식해 ‘갤럭시 생태계’를 강화하고 기술 리더십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국과의 경쟁 심화로 부진을 거듭하고 있는 가전과 TV 사업의 반등을 이끄는 것이 노 부문장의 우선 과제로 요구되고 있다.

▶기술인재 전면 발탁…AI 시대 미래 먹거리 사수=이번 정기 인사를 앞두고 ‘삼성 2인자’로 불리던 정현호 사업지원TF장(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박학규 사장을 초대 수장으로 하는 사업지원실이 출범하면서 대대적인 세대교체와 조직개편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했다.

당초 예상과 달리 이번 정기 사장단 인사는 안정에 무게를 둔 것으로 평가되지만 아직 정기 임원인사와 조직개편이 남아 있어 삼성전자 안팎에서는 여전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가 정기 인사 이후에도 연중 수시인사를 단행할 것이라고 예고한 점도 변수다. 언제든지 대내외 사업 환경에 따라 인사 교체와 조직 개편의 여지를 남긴 셈이다.

이 회장은 대신 DX부문과 DS부문 양대 사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 기술 경쟁력 강화를 강조하며 ‘뉴 삼성’의 방향성과 전략을 분명히 했다.

특히 외부 인사인 박홍근 하버드대학교 교수를 영입해 삼성전자의 미래 선행 기술을 연구개발하는 SAIT 수장에 앉힌 것이 단적인 예다. 1967년생인 박홍근 신임 사장은 서울대 화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한 뒤, 서울대 전체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4년 만에 화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하버드대 교수 재직 시절인 2003년에는 역대 최연소로 호암재단이 수여하는 삼성호암상 과학상을 수상하며 삼성과 인연을 맺었다. 그동안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이라고 강조한 이 회장은 지난해 3월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 직원들과의 간담회에서도 “선행 기술 확보는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정기 사장단 인사에서 유일한 사장 승진자인 윤장현 사장 역시 기술인재로 분류된다.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윤 사장은 오랜 기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재직했으며 이전까지 삼성벤처투자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이 회장이 이번에 삼성전자 DX부문 CTO에 윤 사장을 발탁함으로써 전통 사업인 모바일, TV, 가전 등에 AI와 로봇을 결합해 미래 성장동력 강화에 힘을 싣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삼성물산은 이날 경영기획실장 송규종 부사장을 리조트부문 대표이사 사장 겸 삼성웰스토리 대표이사로 승진 내정하는 정기 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송 신임 사장은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업지원팀장, 경영지원실장과 삼성물산 경영기획실장을 역임한 재무관리 전문가다.

에스원도 신임 대표이사 사장에 정해린 삼성물산 사장을 내정했다. 정 사장은 삼성전자 지원팀, 구주총괄 등 다양한 조직을 거친 경영관리 전문가로, 2022년 말부터 삼성물산 리조트 부문과 삼성웰스토리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김현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