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손재권 더밀크 대표
'미친 인재들'을 끌어당기는 도시의 숨은 엔진
AI 패권 경쟁 본질은 기술 아닌 '구조'
인재·자본·환경이 만든 세계 최고 혁신 허브
손재권 더밀크 대표는 20년 넘게 기자로 활동하며 실리콘밸리 특파원을 역임한 베테랑 저널리스트다. 스탠퍼드 방문연구원 경험을 거쳐 2019년 더밀크를 창업해 한국과 미국을 잇는 크로스보더 미디어를 운영하고 있다. IT 취재 전문기자로서 인텔, 삼성전자 등을 취재하며 기술과 혁신의 현장을 누볐던 그는 왜 안정적인 기자 생활을 뒤로하고 창업의 길을 택했을까. 젠슨 황 NVIDIA CEO의 최근 방한과 26만 장 GPU 투자, 그리고 AI 시대 실리콘밸리의 민낯까지, 그가 직접 목격한 혁신의 최전선 이야기를 들어봤다.
손재권 더 밀크 대표가 3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 라운지에서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와 대담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기자 생활 20년을 뒤로하고 창업을 결심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기자로서 항상 '실천적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알면 끝나는 게 아니라 실천해야 한다는 거죠. 20년간 실리콘밸리를 취재하면서 마크 저커버그, 샘 알트먼 같은 사람들이 왜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지 궁금했습니다. 깊이 취재하다 보니 그 비결은 기업가 정신, 즉 앙트러프러너십에 있더라고요.
특히 AI 같은 거대한 변화가 왔을 때 "이건 단순히 기사로만 전달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밥그릇이 바뀌는 건데 어떻게 관심이 없을 수 있나요. 인터넷, PC, 모바일, SNS 모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툴이잖아요. 기자라면 당연히 이 변화를 깊이 탐구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유튜브도 생기고, 팟캐스트도 생기면서 기자의 역할이 바뀌어야 할 시점이었고, 그래서 2019년 더밀크를 창업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 지역은 기술·자본·인재·생활환경이 모두 집약된 세계 유일의 혁신 허브다. 손 대표는 이 지역이 보상체계와 환경, 퍼스트무버 전략이 맞물리며 수십 년간 IT 산업의 중심축으로 자리해왔다고 설명했다. 사진은 샌프란시스코 전경. Getty Image
-실리콘밸리가 여전히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전 세계 수많은 곳에서 실리콘밸리를 모방하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핵심은 '미친 인재들'이 모이는 구조예요. 그런데 단순히 인재가 많은 게 아니라, 그들을 '미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첫째는 돈, 즉 보상 체계입니다. 인재들은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잘하는 사람 옆에 있고 싶어 해요. 내가 더 배우고 발전하고 싶으니까요. 실리콘밸리는 인간의 본성인 인센티브를 가장 최적화한 곳입니다.
둘째는 환경입니다. 날씨가 좋고 세계 최고의 대학(UC버클리), 세계 1위 골프장, 아름다운 해변, 요세미티 같은 자연, 샌프란시스코 같은 관광 자원까지. 인재의 지적 수준뿐 아니라 삶의 질까지 만족시켜줍니다. 이곳에서 도전하고 싶게 만드는 거죠.
손재권 더 밀크 대표가 3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 라운지에서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와 대담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셋째는 '퍼스트 무버' 효과입니다. 20년 먼저 시작했기 때문에 생긴 격차예요. 1996년 아마존이 온라인 서점을 시작했을 때 수백 개 기업이 도전했지만 결국 1등이 시장과 인재를 선점했습니다. IT 업계 사람들은 퍼스트 무버가 얼마나 중요한지 너무 잘 알아요. 그래서 지금 AI에서도 미친 듯이 투자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본질은 '결심의 힘'입니다. 이걸 하기로 결심하면 무조건 만들어내요. AI가 세상을 바꿀지 아닐지는 사실 아무도 몰라요. 하지만 그들은 결심했고, 그 결심으로 나아가면 반드시 이루게 돼 있습니다.
-샘 알트먼, 젠슨 황, 일론 머스크 등 AI 시대를 이끄는 인물들을 직접 만나보셨죠.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샘 알트먼은 굉장히 내성적이에요. 말이 빠르고 인트로버트합니다. 자기 정체성도 확실하고, 본인 DNA의 흐름을 인정하는 사람이죠.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건 학습 능력과 빠른 전환 능력입니다. Y Combinator 회장으로 있으면서 수많은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어요. "쓸데없는 얘기 왜 이렇게 많아" 하면서도 다 듣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면 그게 자기 것이 됩니다.
그리고 샘은 AGI(인공일반지능)에 대한 강력한 신념이 있습니다. 블로그에 쓴 내용과 컨퍼런스에서 하는 말이 똑같아요. 진짜 믿는 겁니다. 기술 유토피아에 대한 신념이 강해요. 마크 저커버그도 마찬가지고요. '오픈AI'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그래서예요. 지금은 클로즈드 AI가 됐지만, 그래도 제품 가격을 10달러로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이름값을 한다고 보는 거죠.
챗GPT 개발업체인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가 1일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를 통해 방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젠슨 황은 완전히 정반대예요. 가슴이 따뜻하고 사회적 맥락을 잘 읽습니다. 신념과 믿음, 어려움을 이겨낼 힘이 있고 주변을 잘 챙기면서도 내려놓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건 제 말이 아니라 NVIDIA 직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입니다. 대만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와 워싱턴 주립대를 나왔고, 실리콘밸리에 와서는 데니스 식당에서 서빙하던 시절도 있었죠. 일명 흑수저 출신이지만 앙트러프러너십을 모두 갖춘 인물이면서도 사람을 잃지 않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직접 만난 적이 없네요.
-젠슨 황이 최근 한국에 26만 장의 GPU를 투자했습니다. 이게 어떤 의미인가요?
▲이건 단순한 비즈니스 거래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문제예요. 지금 시대의 국가 경쟁력은 컴퓨트 파워입니다. AI가 군사력, 경제력, 생산성을 모두 좌우하잖아요. 우크라이나 전쟁의 AI 드론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 컴퓨트 파워의 핵심이 GPU이고, 최신 칩이 26만 개나 한국에 온 겁니다. 어마어마한 선물이죠.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중국은 지금 수출 금지라 못 팔아요. 그러면 아시아 태평양에서 GPU 허브가 될 나라가 필요한데, 대만은 이미 R&D 센터를 짓기로 했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있습니다. 일본은 레거시가 있고 디지털 전환이 느립니다. 젠슨은 한국을 "하드웨어·소프트웨어·서비스까지 모두 강한 나라"라고 평가합니다. 게다가 제조업도 강하고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부터)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30일 저녁 서울 삼성동의 한 치킨집에서 '치맥' 회동을 마친 후 인사를 하고 있다. 2025.10.30 조용준 기자
특히 NVIDIA 로드맵이 피지컬 AI로 바뀌었죠. 에이전트 다음이 피지컬인데, 피지컬 AI로 넘어가기 최적의 국가가 어디냐. 독일, 일본, 한국인데, 일본은 소프트웨어가 약하고 트렌드를 만드는 나라가 아닙니다. 한국은 K-POP, K-패션처럼 트렌드를 세팅하는 나라예요. 로봇 기반 기술도 있고, 네이버도 만들어봤고, 게임도 만들어봤습니다. 젠슨이 볼 때 이건희 회장이 90년대 게임 올림픽을 만들자고 했던 그 나라, GPU를 게임방에서 써대던 그 나라의 잠재력을 본 거죠.
26만 장 중 5만 장은 현대차, 5만 장은 SK, 5만 장은 삼성전자, 네이버 6만장, 나머지 5만장은 정부가 사용하게 될 거에요.
이제 우리가 이걸 가지고 뭘 할지 숙제가 된 거죠.
-한국이 AI 시대에 경쟁력을 가지려면 어디에 집중해야 할까요?
▲피지컬 AI입니다. LLM(대규모 언어모델) 같은 소프트웨어 AI로 미국이나 중국과 경쟁하면 스케일에서 밀립니다. 하지만 우리만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있어요. 이스라엘이 사이버 보안에서 강점을 찾았듯, 우리는 피지컬 AI?즉 로봇과 제조업의 결합입니다.
손재권 더 밀크 대표가 3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 라운지에서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와 대담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로봇 기반 기술을 가진 나라는 중국, 일본, 독일, 한국 네 나라뿐입니다. 그중에서도 한국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잘해요. 일본보다 소프트웨어가 낫고, 서비스 감각도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도 한국이 '피지컬한 것을 잘 만든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어요. 실리콘밸리에 가보면 아이오닉, 펠리세이드, 텔루라이드 같은 현대차·기아차가 눈에 띕니다.
K-POP, 한국 드라마처럼 '카리스마 있고 매력적인 제품'을 만드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미국 사람들이 말합니다. 그 테크 감성에 제조업 역량을 결합하면 피지컬 AI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AI 기술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기술 수준, 인재 수준, 정부 정책?세 측면 모두 월드 클래스입니다. 딥시크, 큐웬 같은 모델이 나오는 걸 보면 기술력은 이미 증명됐어요. AI 수출 금지 상황에서도 화웨이 스마트폰, 휴머노이드 로봇 등 모든 면에서 월드 클래스 제품을 냅니다.
인재 수준도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리콘밸리 가면 페이스북, 구글 엔지니어 중 절반 이상이 중국인이에요. AI 논문도 중국인이 가장 많이 씁니다. 정부 정책 역시 압도적입니다. 5개년 계획을 가진 나라는 지금 중국과 북한밖에 없어요.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했지만 지금은 안 하잖아요. 중국은 여전히 유지하며 위너를 픽하고 집중 투자합니다. 기술과 시장을 완전히 통합해 가는 것이죠.
양자컴퓨팅, 우주, 로봇, 핵융합 등 미래 기술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국이 미국을 앞서가고 있습니다. 바이오 메디컬도 마찬가지예요. 미국 생물학과 가보면 중국인이 얼마나 많은데요. 중국과 미국, 이 두 나라가 탑이라고 봐야 합니다.
손재권 더 밀크 대표가 3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 라운지에서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와 대담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AI 버블 논란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나요?
▲위시풀 싱킹(wishful thinking)이 섞여 있다고 봅니다. 월가나 유럽에서는 "버블이었으면 좋겠다"는 희망 섞인 의견이 있어요. 자신들이 속도를 못 따라가니 한 번 빠졌으면 좋겠고, 그래야 뒤늦은 경우 진입할 기회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기회는 '크로스'할 때 생기는데, 초기에 기회를 못 잡았으니 한 번 기회를 달라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버블은 사람들이 모를 때 터져요. 다들 안심할 때 터지는 것이지, 조심하고 있을 때는 터지지 않습니다. 지금 위시풀 싱킹이 나오는 것 자체가 오히려 버블이 더 갈 가능성이 높다는 신호로 생각해요.
핵심은 수요와 생산성입니다. 실제로 GDP를 끌어올리느냐가 관건인데, 마이크로소프트 사티아 나델라와 샘 알트먼이 공통적으로 말하길 수요가 줄어들 리가 없다고 합니다. 지금은 GPU 공급 부족이 문제예요. 물론 그레이스·블랙웰 같은 최신 칩은 일부 남는 게 사실입니다. 그 컴퓨팅 파워를 쓸 애플리케이션이 아직 없거든요. 너무 빠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추론용으로 쓰는데, 추론은 그 정도까지 필요 없어요.
하지만 그 고사양을 쓸 수 있는 나라는 한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밖에 없습니다. 에너지 전력을 맞춰줄 수 있는 나라도 한정돼 있고요. 저는 최소 2~3년은 버블이 안 터진다고 봅니다. 특히 오픈AI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3년까지는요.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모멘텀을 유지할 겁니다.
손재권 더 밀크 대표가 3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 라운지에서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와 대담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마지막으로,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창업을 또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젊은 기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다시 돌아가도 저는 창업을 할 것 같아요. 지금 제가 한 결정에 대해 후회한 적 없습니다. 이미 6년을 살아남았고, 그 과정에서 배운 게 너무 많습니다. 사업가로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기자에서 창업가로 전환하며 얻은 통찰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 됐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배운 앙트러프러너십을 직접 실천하며 '지식인은 알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기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기자의 역할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현장을 기계적으로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시대예요. 유튜브, 팟캐스트, SNS로 누구나 직접 발언할 수 있는 세상에서 기자는 더 깊은 맥락과 통찰을 제공해야 합니다. 창업은 그 실천의 한 방법일 수 있죠.
다만 창업을 고민한다면 기존 모델을 답습하지 않기를 바래요. 유사 매체를 만드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기자로서 발견한 '진짜 문제', 그것을 해결할 독창적인 방법이 있을 때 창업해야 합니다. 시장을 나눠 먹는 게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거죠.
결과 중심의 문제 해결 능력, 실행력, 그리고 자기만의 솔루션. 이 세 가지가 있다면 창업은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모방이 아니라 창조입니다. 그게 실리콘밸리에서 제가 배운 가장 큰 교훈이고, 지금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원칙입니다.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김혜연 안무가 여니스트 대표
'미친 인재들'을 끌어당기는 도시의 숨은 엔진
AI 패권 경쟁 본질은 기술 아닌 '구조'
인재·자본·환경이 만든 세계 최고 혁신 허브
편집자주아시아경제는 나날이 발전하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예술창작 분야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사람'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공학자와 예술인의 관점에서 고찰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매월 한 차례씩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와 김혜연 안무가(여니스트 대표)가 예술창작인과 대담하거나 작품에 관해 토론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코너 제목에 들어가는 'AHA'는 'AI, Human & Art'를 뜻합니다. 생성형 AI의 미래를 누구보다 뜨겁게 탐구하는 김대식 교수, 생성형 AI와 무용을 과감하게 접목하고 있는 김혜연 안무가를 통해 AI와 사람, 그리고 예술이라는 묵직한 화두에 한 걸음 더 다가가 보시기를 기대합니다.
손재권 더밀크 대표는 20년 넘게 기자로 활동하며 실리콘밸리 특파원을 역임한 베테랑 저널리스트다. 스탠퍼드 방문연구원 경험을 거쳐 2019년 더밀크를 창업해 한국과 미국을 잇는 크로스보더 미디어를 운영하고 있다. IT 취재 전문기자로서 인텔, 삼성전자 등을 취재하며 기술과 혁신의 현장을 누볐던 그는 왜 안정적인 기자 생활을 뒤로하고 창업의 길을 택했을까. 젠슨 황 NVIDIA CEO의 최근 방한과 26만 장 GPU 투자, 그리고 AI 시대 실리콘밸리의 민낯까지, 그가 직접 목격한 혁신의 최전선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자 생활 20년을 뒤로하고 창업을 결심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기자로서 항상 '실천적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알면 끝나는 게 아니라 실천해야 한다는 거죠. 20년간 실리콘밸리를 취재하면서 마크 저커버그, 샘 알트먼 같은 사람들이 왜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지 궁금했습니다. 깊이 취재하다 보니 그 비결은 기업가 정신, 즉 앙트러프러너십에 있더라고요.
특히 AI 같은 거대한 변화가 왔을 때 "이건 단순히 기사로만 전달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밥그릇이 바뀌는 건데 어떻게 관심이 없을 수 있나요. 인터넷, PC, 모바일, SNS 모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툴이잖아요. 기자라면 당연히 이 변화를 깊이 탐구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유튜브도 생기고, 팟캐스트도 생기면서 기자의 역할이 바뀌어야 할 시점이었고, 그래서 2019년 더밀크를 창업했습니다.
-실리콘밸리가 여전히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전 세계 수많은 곳에서 실리콘밸리를 모방하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핵심은 '미친 인재들'이 모이는 구조예요. 그런데 단순히 인재가 많은 게 아니라, 그들을 '미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첫째는 돈, 즉 보상 체계입니다. 인재들은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잘하는 사람 옆에 있고 싶어 해요. 내가 더 배우고 발전하고 싶으니까요. 실리콘밸리는 인간의 본성인 인센티브를 가장 최적화한 곳입니다.
둘째는 환경입니다. 날씨가 좋고 세계 최고의 대학(UC버클리), 세계 1위 골프장, 아름다운 해변, 요세미티 같은 자연, 샌프란시스코 같은 관광 자원까지. 인재의 지적 수준뿐 아니라 삶의 질까지 만족시켜줍니다. 이곳에서 도전하고 싶게 만드는 거죠.
셋째는 '퍼스트 무버' 효과입니다. 20년 먼저 시작했기 때문에 생긴 격차예요. 1996년 아마존이 온라인 서점을 시작했을 때 수백 개 기업이 도전했지만 결국 1등이 시장과 인재를 선점했습니다. IT 업계 사람들은 퍼스트 무버가 얼마나 중요한지 너무 잘 알아요. 그래서 지금 AI에서도 미친 듯이 투자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본질은 '결심의 힘'입니다. 이걸 하기로 결심하면 무조건 만들어내요. AI가 세상을 바꿀지 아닐지는 사실 아무도 몰라요. 하지만 그들은 결심했고, 그 결심으로 나아가면 반드시 이루게 돼 있습니다.
-샘 알트먼, 젠슨 황, 일론 머스크 등 AI 시대를 이끄는 인물들을 직접 만나보셨죠.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샘 알트먼은 굉장히 내성적이에요. 말이 빠르고 인트로버트합니다. 자기 정체성도 확실하고, 본인 DNA의 흐름을 인정하는 사람이죠.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건 학습 능력과 빠른 전환 능력입니다. Y Combinator 회장으로 있으면서 수많은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어요. "쓸데없는 얘기 왜 이렇게 많아" 하면서도 다 듣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면 그게 자기 것이 됩니다.
그리고 샘은 AGI(인공일반지능)에 대한 강력한 신념이 있습니다. 블로그에 쓴 내용과 컨퍼런스에서 하는 말이 똑같아요. 진짜 믿는 겁니다. 기술 유토피아에 대한 신념이 강해요. 마크 저커버그도 마찬가지고요. '오픈AI'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그래서예요. 지금은 클로즈드 AI가 됐지만, 그래도 제품 가격을 10달러로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이름값을 한다고 보는 거죠.
반면 젠슨 황은 완전히 정반대예요. 가슴이 따뜻하고 사회적 맥락을 잘 읽습니다. 신념과 믿음, 어려움을 이겨낼 힘이 있고 주변을 잘 챙기면서도 내려놓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건 제 말이 아니라 NVIDIA 직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입니다. 대만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와 워싱턴 주립대를 나왔고, 실리콘밸리에 와서는 데니스 식당에서 서빙하던 시절도 있었죠. 일명 흑수저 출신이지만 앙트러프러너십을 모두 갖춘 인물이면서도 사람을 잃지 않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직접 만난 적이 없네요.
-젠슨 황이 최근 한국에 26만 장의 GPU를 투자했습니다. 이게 어떤 의미인가요?
▲이건 단순한 비즈니스 거래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문제예요. 지금 시대의 국가 경쟁력은 컴퓨트 파워입니다. AI가 군사력, 경제력, 생산성을 모두 좌우하잖아요. 우크라이나 전쟁의 AI 드론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 컴퓨트 파워의 핵심이 GPU이고, 최신 칩이 26만 개나 한국에 온 겁니다. 어마어마한 선물이죠.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중국은 지금 수출 금지라 못 팔아요. 그러면 아시아 태평양에서 GPU 허브가 될 나라가 필요한데, 대만은 이미 R&D 센터를 짓기로 했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있습니다. 일본은 레거시가 있고 디지털 전환이 느립니다. 젠슨은 한국을 "하드웨어·소프트웨어·서비스까지 모두 강한 나라"라고 평가합니다. 게다가 제조업도 강하고요.
특히 NVIDIA 로드맵이 피지컬 AI로 바뀌었죠. 에이전트 다음이 피지컬인데, 피지컬 AI로 넘어가기 최적의 국가가 어디냐. 독일, 일본, 한국인데, 일본은 소프트웨어가 약하고 트렌드를 만드는 나라가 아닙니다. 한국은 K-POP, K-패션처럼 트렌드를 세팅하는 나라예요. 로봇 기반 기술도 있고, 네이버도 만들어봤고, 게임도 만들어봤습니다. 젠슨이 볼 때 이건희 회장이 90년대 게임 올림픽을 만들자고 했던 그 나라, GPU를 게임방에서 써대던 그 나라의 잠재력을 본 거죠.
26만 장 중 5만 장은 현대차, 5만 장은 SK, 5만 장은 삼성전자, 네이버 6만장, 나머지 5만장은 정부가 사용하게 될 거에요.
이제 우리가 이걸 가지고 뭘 할지 숙제가 된 거죠.
-한국이 AI 시대에 경쟁력을 가지려면 어디에 집중해야 할까요?
▲피지컬 AI입니다. LLM(대규모 언어모델) 같은 소프트웨어 AI로 미국이나 중국과 경쟁하면 스케일에서 밀립니다. 하지만 우리만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있어요. 이스라엘이 사이버 보안에서 강점을 찾았듯, 우리는 피지컬 AI?즉 로봇과 제조업의 결합입니다.
로봇 기반 기술을 가진 나라는 중국, 일본, 독일, 한국 네 나라뿐입니다. 그중에서도 한국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잘해요. 일본보다 소프트웨어가 낫고, 서비스 감각도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도 한국이 '피지컬한 것을 잘 만든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어요. 실리콘밸리에 가보면 아이오닉, 펠리세이드, 텔루라이드 같은 현대차·기아차가 눈에 띕니다.
K-POP, 한국 드라마처럼 '카리스마 있고 매력적인 제품'을 만드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미국 사람들이 말합니다. 그 테크 감성에 제조업 역량을 결합하면 피지컬 AI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AI 기술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기술 수준, 인재 수준, 정부 정책?세 측면 모두 월드 클래스입니다. 딥시크, 큐웬 같은 모델이 나오는 걸 보면 기술력은 이미 증명됐어요. AI 수출 금지 상황에서도 화웨이 스마트폰, 휴머노이드 로봇 등 모든 면에서 월드 클래스 제품을 냅니다.
인재 수준도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리콘밸리 가면 페이스북, 구글 엔지니어 중 절반 이상이 중국인이에요. AI 논문도 중국인이 가장 많이 씁니다. 정부 정책 역시 압도적입니다. 5개년 계획을 가진 나라는 지금 중국과 북한밖에 없어요.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했지만 지금은 안 하잖아요. 중국은 여전히 유지하며 위너를 픽하고 집중 투자합니다. 기술과 시장을 완전히 통합해 가는 것이죠.
양자컴퓨팅, 우주, 로봇, 핵융합 등 미래 기술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국이 미국을 앞서가고 있습니다. 바이오 메디컬도 마찬가지예요. 미국 생물학과 가보면 중국인이 얼마나 많은데요. 중국과 미국, 이 두 나라가 탑이라고 봐야 합니다.
-AI 버블 논란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나요?
▲위시풀 싱킹(wishful thinking)이 섞여 있다고 봅니다. 월가나 유럽에서는 "버블이었으면 좋겠다"는 희망 섞인 의견이 있어요. 자신들이 속도를 못 따라가니 한 번 빠졌으면 좋겠고, 그래야 뒤늦은 경우 진입할 기회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기회는 '크로스'할 때 생기는데, 초기에 기회를 못 잡았으니 한 번 기회를 달라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버블은 사람들이 모를 때 터져요. 다들 안심할 때 터지는 것이지, 조심하고 있을 때는 터지지 않습니다. 지금 위시풀 싱킹이 나오는 것 자체가 오히려 버블이 더 갈 가능성이 높다는 신호로 생각해요.
핵심은 수요와 생산성입니다. 실제로 GDP를 끌어올리느냐가 관건인데, 마이크로소프트 사티아 나델라와 샘 알트먼이 공통적으로 말하길 수요가 줄어들 리가 없다고 합니다. 지금은 GPU 공급 부족이 문제예요. 물론 그레이스·블랙웰 같은 최신 칩은 일부 남는 게 사실입니다. 그 컴퓨팅 파워를 쓸 애플리케이션이 아직 없거든요. 너무 빠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추론용으로 쓰는데, 추론은 그 정도까지 필요 없어요.
하지만 그 고사양을 쓸 수 있는 나라는 한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밖에 없습니다. 에너지 전력을 맞춰줄 수 있는 나라도 한정돼 있고요. 저는 최소 2~3년은 버블이 안 터진다고 봅니다. 특히 오픈AI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3년까지는요.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모멘텀을 유지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창업을 또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젊은 기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다시 돌아가도 저는 창업을 할 것 같아요. 지금 제가 한 결정에 대해 후회한 적 없습니다. 이미 6년을 살아남았고, 그 과정에서 배운 게 너무 많습니다. 사업가로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기자에서 창업가로 전환하며 얻은 통찰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 됐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배운 앙트러프러너십을 직접 실천하며 '지식인은 알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기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기자의 역할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현장을 기계적으로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시대예요. 유튜브, 팟캐스트, SNS로 누구나 직접 발언할 수 있는 세상에서 기자는 더 깊은 맥락과 통찰을 제공해야 합니다. 창업은 그 실천의 한 방법일 수 있죠.
다만 창업을 고민한다면 기존 모델을 답습하지 않기를 바래요. 유사 매체를 만드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기자로서 발견한 '진짜 문제', 그것을 해결할 독창적인 방법이 있을 때 창업해야 합니다. 시장을 나눠 먹는 게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거죠.
결과 중심의 문제 해결 능력, 실행력, 그리고 자기만의 솔루션. 이 세 가지가 있다면 창업은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모방이 아니라 창조입니다. 그게 실리콘밸리에서 제가 배운 가장 큰 교훈이고, 지금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원칙입니다.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김혜연 안무가 여니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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