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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 사회, 더 건강하게!] 〈5회〉 암은 결코 피할 수 없을까
동아일보-고려대 의료원 공동 기획
고령 암은 만성질환, 꾸준히 증가… 젊을 때부터 관리하면 암 발생 낮춰
초기-진행성 암 모두 치료효과 높아… 환자 투병의지가 완치에 큰 도움
암에 걸리지 않으려면 젊었을 때부터 예방 수칙을 가급적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암 조기 검진도 꼭 필요하다. 한 남성이 위암 조기 발견을 위한 위내시경 검사를 받고 있다. 고려대 의료원 제공
국내 기대수명은 남자 79.9세, 여자 85.6세다. 이 나이까지 살 때 암에 걸릴 확률은 얼마나 될까. 올 1월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남자는 37%, 여자는 34.8%였다. 남자 5명 중 2명, 여자 3명 중 1명꼴로, 사망 전까지 1회 이상 암에 걸릴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암이 고령자만의 질병은 아니다. 현재 암 환자이거나, 한때 암 환자였던 비율은 전 국민의 5% 정도이다. 국민 100명 중 5명은 암과의 투병을 경험했거나 경험하고 있다. 물론 고령 환자의 증가율이 더 가파르다. 왜 그런 걸까. 이 증가율을 떨어뜨릴 수는 없을까.

● 고령 암 발생 늘어나는 까닭은

박경화 고려대 안암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초고령 사회, 최선의 시나리오는 암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박경화 고려대 안암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피할 수 없다면 맞서야 한다. 암 관련 정보를 잘 알아두고, 적극 투병하는 등 기본적인 사항부터 지키면 설령 암에 걸리더라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의학적으로 볼 때 고령 암 환자의 증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암은 유전자 돌연변이가 누적되면서 발생한다. 임채홍 고려대 안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정상적이라면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이 암세포를 죽인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돌연변이가 누적되면서 암이 발생한다”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도 “나이가 들면서 면역 체계의 방어 능력, 문제가 있는 세포가 자멸하도록 유도하는 기능, 돌연변이를 수리하는 능력이 모두 떨어진다. 이런 점도 고령 암 발생률을 높이는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 설명을 종합하면, 암은 고령자에게 일종의 만성질환이다.

수명이 늘어나면 고령자도 늘어난다. 의료 기술이 발전하면 암을 더 쉽게 진단해 낸다. 결과적으로 암 환자는 증가한다. 앞으로도 고령 암 환자는 줄어들지 않고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나이 들어 암에 걸렸으니 젊었을 때보다 악화하는 속도가 더디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틀렸다. 암의 종류에 따라 속도가 다를 뿐, 고령이라고 해서 속도가 더딘 암은 없다. 오히려 폐암, 대장암, 위암, 전립샘암 등에서는 간혹 고령에서 난치성일 때가 있다.

● 그래도 암 예방법은 있다

나이가 들어 암에 안 걸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젊었을 때부터 관리하는 것이다. 박 교수는 “모든 만성질환과 마찬가지로 젊었을 때 잘 관리해야 65세 이후에 암에 덜 걸린다”라고 말했다. 중년 이후에 관리에 돌입하면 늦을까. 박 교수는 “50대든 60대든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 관리하면 그만큼 암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관리의 기본은 다른 만성질환 예방 원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적절히 운동하고 잘 먹고, 체중 관리 잘하며, 유해환경을 피하는 것이다. 박 교수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실천이다. 국립암센터가 권고한 10대 암 예방 수칙을 잘 지키는 것이 암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라고 덧붙였다.(암 예방 수칙 참고)

임채홍 고려대 안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임 교수는 흡연, 식이 습관, 유전 및 환경 요인이 각각 3분의 1씩 암을 유발한다고 말했다. 담배는 끊고, 올바른 식습관을 갖추는 게 중요한 이유다. 임 교수는 “미국에서 시행된 대규모 연구 결과 여러 색깔의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먹고, 붉은 육류보다는 생선과 닭고기를 먹으며, 백미보다는 현미나 통곡물을 많이 먹었을 때 암 사망률이 16% 감소했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추가로 “고열량, 고지방 음식을 자주 먹으면 비만이 되기 쉽다. 비만은 암의 가장 큰 위험 인자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건강검진은 필수다. 초기에 암을 발견할 때 사망률은 크게 떨어진다. 임 교수는 “유방, 위, 대장암의 경우 국가 검진을 잘 받아 초기에 발견했을 때의 5년 생존율은 94∼99%다. 반면 발견이 늦으면 위암은 7%, 대장암은 20%, 유방암은 49%밖에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국가 암 검진에서 고령자 가이드라인은 따로 없다. 80세 이후에는 검진 효과가 불확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따라서 75세 이후부터는 주치의와 상의해서 적절한 시기에 검진하는 게 최선이다.

● 의료 발전으로 치료 효과 높여


과거에는 암 진단이 곧 사형 선고로 여겨졌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검진으로 일찍 암을 발견한 덕분에 완치율이 높아졌다. 암이 다른 부위로 전이가 됐더라도 치료가 충분히 가능하다. 먼저 항암치료를 통해 암 크기를 줄인 뒤 수술한다. 수술 결과에 따라 추가 항암치료를 통해 암을 제거할 수 있다.

약물 효과도 크게 개선됐다. 과거에는 항암제가 암세포뿐 아니라 주변의 건강한 세포까지 죽이는 바람에 후유증이 컸다. 최근에는 면역항암제와 표적치료제를 병행 투입하면서 치료 효과를 높이는 정밀의학이 대세다. 박 교수는 “암이 재발했거나 진행하고 있는 경우에도 유전자를 분석한 뒤 가장 적합한 약물을 골라 투입한다”라고 말했다.

방사선치료 효과도 좋아지고 있다. 임 교수는 “전립샘암이나 자궁경부암, 성대암, 인두암의 경우 방사선치료가 항암치료 성적과 비슷할 정도로 높아졌다”라고 말했다. 조기 폐암과 간암을 앓고 있는 고령자의 경우 방사선수술로 치료 성적을 높이고 있다.

박 교수는 “대체로 초기 암이라면 완치를 목표로 치료한다. 4기라 하더라도 삶의 질을 개선하면서 생존 기간을 충분히 늘리고 있다”라며 “해외 여러 나라와 비교해도 국내 암 치료 성적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 슬기로운 투병이 치료율 높여

잘 관리해도 암에 걸릴 수는 있다. 어떻게 투병하느냐가 중요하다. 박 교수는 무엇보다 평소 건강 관리를 주문했다. 기저질환이 있거나 체력이 약하면 치료 성적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 체력이 좋아야 암과 싸워 이겨낼 수 있다.

몇 년 전, 70대 후반 여성 김미순 씨(가명)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암은 뼈로 전이돼 있었다. 가족은 고령 때문에 항암치료를 이겨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의료진을 믿고 치료에 임했다. 의료진은 항암 용량을 낮추고 치료를 시작했다. 다행히 암은 더 이상 악화하지 않았다.

하지만 2년 후 암이 뇌로 전이됐다. 수술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번에도 가족은 고령 환자가 대형 수술을 견디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다. 의료진은 충분히 설명했고, 가족은 의료진을 믿기로 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 후로 4년이 흐른 지금, 김 씨는 80대의 나이지만 건강하게 살고 있다.

박 교수는 이를 모범적인 투병 생활 사례라고 소개했다. 첫째, 암을 이겨내겠다는 환자의 의지가 강했다. 간혹 비교적 초기에 암을 발견했는데도 절망감에 빠져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들이 있다. 특히 노인 중에 이런 환자가 많다. 입맛이 없다고 식사를 거르고 운동도 하지 않는다. 박 교수는 “의료진이 모든 것을 다 해줄 수는 없다. 병과 싸우려는 환자 의지가 중요하다. 환자의 적극적 의지는 완치에 이르는 요소 중에서 30∼40%는 차지한다”라고 말했다.

둘째, 의료진에 대한 신뢰도 중요하다. 의사의 지침을 무시하거나, 민간요법에 의존하는 환자들이 드물지 않다. 김 씨의 가족은 의사와 소통했고, 의사의 지침을 따랐다. 마지막으로 가족의 전폭적 지원이 필요하다. 박 교수는 “고령 환자일수록 겁을 먹어 치료에 소극적일 때가 많다. 고령 암 환자의 10∼20%는 초기에 수술과 같은 치료를 거부하기도 한다. 이럴 때 가족이 나서서 안심시켜 주고, 투병 과정에서도 독려해야 치료 효과가 좋아진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