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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희 한국자살예방협회 자살예방교육 전문 강사(60)는 지난해 10월 춘천마라톤에서 42.195km를 5시간 조금 넘어 완주했다. 한국에서 어린 시절부터 대학까지, ‘스포츠 천국’ 뉴질랜드에서 공부하고 직장 잡아 사는 동안에도 운동이라는 것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그로선 한마디로 천지개벽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소성희 한국자살예방협회 자살예방교육 전문 강사가 한 마라톤 대회에서 질주하고 있다. 평생 운동이라는 것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던 그는 2020년 초 서울 여의도고교 선배를 만나면서 달리기 시작해 마라톤 42.195km 풀코스까지 완주하게 됐다. 소성희 강사 제공.“제가 살면서 풀코스까지 완주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2020년 초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서울 여의도고교 동문 선배를 만난 게 절 달리게 만들었죠. 아버지가 위독하시다고 해 이민 생활을 접고 2018년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아이들이 있는 뉴질랜드를 오갈 때였죠. 여의도고 6년 선배님이 사모님과 함께 온 거에요. 딸을 뉴질랜드로 시집보내고 약 한 달 머물게 됐죠. 제가 두 분이 심심하실까 봐 근처 산으로 트레킹을 함께 다녔어요. 그게 인연이 돼 평생 해보지 않은 마라톤에 입문하게 됐어요.”

소 강사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자 함께 달리자고 한 것이다. 그 선배는 ‘너마클(여의도고 동문 마라톤클럽)’에서 회장도 하며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었다. 너마클은 여의도의 한글 이름이 너섬인 것에서 따온 것이다. 너섬마라톤클럽의 줄인 말이다. 너마클은 일요일 새벽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함께 운동하고, 전국의 대회를 정해서 출전하는 모임이다. 그는 “여름엔 오전 6시 30분, 겨울엔 오전 7시에 모여 달린다고 했다. 그럼 준비해 모임 장소까지 가려면 늦어도 오전 5시나, 5시 30분에 일어나야 하는데 그동안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다”고 했다.

소성희 강사가 지난해 10월 열린 춘천마라톤 42.195km 풀코스를 완주한 뒤 양팔을 들어 올리며 기뻐하고 있다. 소성희 강사 제공.2020년 여름 마음을 다잡고 너마클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해 초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돼 너마클 전체 모임을 하지 못하고 3~4명 소그룹 훈련을 했다. 당시는 실내 기준으로 4명 이상 모이지 못할 때였다. 야외는 그보다 많은 인원이 모여도 됐지만 주변 사람들의 눈치 때문에 소그룹으로 달렸다. 경기 성남 분당 사는 선배들과 탄천을 달렸다.

“전 열심히 뛰는 스타일이 아니었죠. 다른 회원들은 날씬했는데 전 살이 잘 빠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2021년 여름 매일 빠른 속도로 10km씩 3개월 걸었죠. 그때 체중이 많이 빠졌고, 이후 운동도 제대로 할 수 있었죠. 그리고 그해 11월 언택트로 열린 손기정평화마라톤에서 선배의 페이스메이커 속에 하프코스를 2시간 30분에 완주했죠. 그제야 마라톤의 맛을 좀 알게 됐습니다.”

소성희 강사(앉은 사람들 왼쪽)가 너마클 회원들과 한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단체 사진을 찍었다. 소성희 강사 제공.하프코스를 완주한 뒤 어깨와 발, 허벅지 등이 아파 규칙적으로 달릴 수 없었다.
“제가 늘 어깨 상태가 좋지 않아요. 하프코스를 완주한 뒤 어깨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염증이 심하다고 해 주사를 맞았어요. 당시 달리기를 그만둘까도 고민했었는데 너마클 선배님들이 일주일에 한 번 정모에서 뛰는 것만으로 운동이 된다고 해서 계속할 수 있었죠. 너마클 선후배님들이 서로 배려하고 응원하는 분위기도 저를 계속 달리 게 만들었죠.”

스포츠 심리학적으로 마라톤 등 힘든 스포츠를 할 땐 동호회 활동이 큰 도움이 된다. 혼자 하면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고 기분에 따라 운동을 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동호회에 나가면 서로 격려하며 할 수 있고, 아니면 다소 강압적으로라도 운동을 이어갈 수 있다. 소 강사도 고교 동문들로 이뤄진 너마클 덕분에 더 잘 달릴 수 있었던 셈이다.

소성희 강사가 산에 오르다 카메라 앞에 섰다. 소성희 강사 제공.몸 이곳저곳이 아프면서 몸 상태를 더 좋게 유지하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래서 휄든크라이스를 시작했고, 지금은 필라테스와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있다”고 했다. 휄든크라이스는 움직임을 통해 심신을 건강하게 하는 자기계발법이다. 웨이트트레이닝은 재활에 초점을 맞췄다. 전반적으로 근육을 키우면서도 약한 부위를 더 강화했다. 그는 “경기도 과천 힐앤필 PT&필라테스에서 운동하고 있다”고 했다. 힐앤필 PT&필라테스는 재활PT를 전문으로 하는 박태윤 트레이너가 ‘1대1 PT’로 운영하고 있다.

소 강사는 코로나19가 완화된 2023년부터 너마클 전체 모임에서 본격적으로 달렸다. 코로나19 여파로 열리지 않던 대회들도 열렸다. 하프코스를 주로 달리다 지난해 10월 춘천마라톤에서 풀코스를 처음 완주했다.

“지난해 초 어머니께서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연세가 89세인지라 수술도 하고 재활에 5개월 정도 걸렸죠. 그때 어머니 간호하려 병원을 오가다 보니 규칙적으로 달릴 수 없었죠. 당시 메이저대회 참가 접수가 쉽지 않던 때였는데 운 좋게 춘천마라톤 풀코스 참가 접수도 된 상태였죠. 8월쯤부터 제대로 훈련할 수 있었는데 10km도 버거운 몸 상태가 된 겁니다. 그래서 열심히 훈련할 수밖에 없었죠.”

소성희 강사가 지난해 10월 열린 춘천마라톤 42.195km 풀코스를 달리다 두 팔을 들어 올리고 있다. 소성희 강사 제공.소 강사는 선배들과 함께 체계적으로 훈련했다. 주중엔 하루 10km 달리고 하루 쉬고를 반복했다. 그는 “선배님이 주중에 10km를 달리면 하루 쉬어야 잘 달릴 수 있다”고 했다. 주말엔 길어야 16km 달렸는데 하프, 28km까지 달렸다. 풀코스를 달리려면 대회 전 30km 이상 달리는 LSD(Long Slow Distance) 훈련 최소 2회 이상 해야 한다. 오르막이 많은 춘천마라톤 코스를 감안해 언덕 훈련도 했다.

“제가 풀코스를 완주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죠. 선배님들과 얘기하며 편안하게 달렸어요. 30km 넘어 발목이 좋지 않았지만 스프레이 파스 뿌려가며 달렸죠. 사람들이 제가 달리기를 시작한 뒤 에너지가 넘친다고 해요. 달릴수록 힘이 빠질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달릴수록 힘이 생겨요. 그래서 삶이 더 활기차졌어요.”

소 강사는 뉴질랜드에서 중독 상담사로 구세군(The Salvation Army)과 술과 마약 치료소에서 근무했었고, 한국에 와서는 자살예방 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소 강사는 2일씩 워크숍 개념으로 군부대 간부, 정신건강센터 사회복지사 등을 대상으로 하는 실용적 자살예방 훈련(ASIST·Applied Suicide Intervention Skills Training program) 교육을 하고 있다. 그는 “그냥 자살예방에 대한 지식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고 교육생들에게 직접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한다는 실질적인 방법을 훈련한다”고 했다.

소성희 강사가 올 5월 열린 서울 여의도고교 총동문회 행사에서 ‘너마클은 사랑입니다’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소성희 강사 제공.소 강사는 올해부터 너마클 회장을 맡고 있다.
“너마클은 달리면서 마일리지를 모아 기부도 하는 모임입니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어려운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어요. 회원은 40명이 좀 넘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회원이 25명 정도 됩니다. 서로 화합하고 배려하고 너무 좋습니다. 올 5월에 학교 총동문회 행사에서 ‘너마클은 사랑입니다’를 주제로 발표했는데 회원들이 20명 넘게 참석해 환호해 줬죠.”

소 강사는 11월 16일 열린 손기정평화마라톤에서 두 번째 풀코스 완주에 도전하려고 했지만, 하프 코스만 2시간 25분에 달렸다. 그는 “얼마 전 딸 결혼시키느라 훈련하지 않아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독감도 걸렸다. 역시 마라톤은 정직하다. 하지만 무리하지 않아야 오래 달릴 수 있다”며 웃었다. 그는 “훈련 열심히 해 내년 2월 오사카 마라톤에선 다시 풀코스를 완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