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폐 보안기술, 미술 시장 위작 대응에 접목
조폐공사, AI 워터마크로 미술품 진위 검증
‘인천아트쇼2025’ 기간 중 한국조폐공사의 ICT보안기술인 ‘디지털 워터마크’를 적용한 박신양 작가의 여러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조폐공사 제공]
요즘 미술관과 갤러리는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다. 과거 소수 특권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미술품이 이제는 우리 삶 속으로 성큼 들어왔다. 집 거실 한쪽 벽을 장식할 그림 한 점을 고르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간한 ‘미술시장조사 2024’에 따르면 국내 미술 시장 규모는 연간 약 6900억원, 거래 작품 수만 5만건에 달한다. 미술은 이제 문화 콘텐츠이자 투자 자산으로서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눈부신 성장세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바로 위작 문제다.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사건, 이우환 화백의 작품 진위 논란까지, 거장들의 작품조차 위작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위작은 단순히 작가의 명예를 훼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선의로 작품을 구매한 이들에게 금전적·정신적 상처를 남기고, 무엇보다 미술 시장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정부가 ‘미술진흥법’을 통해 진품증명서 제공을 의무화했지만, 종이 한 장으로 된 증명서는 위조와 변조에 여전히 취약하다. 법과 규제만으로는 교묘하게 진화하는 위작 유통을 완전히 막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술의 역할이 주목받기 시작한다. 화폐를 만들며 쌓아온 보안 기술이 미술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올해로 5회째를 맞는 인천아트쇼가 지난 11월 20일부터 오늘까지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리고 있다. “우리도 그림 하나 걸까요”라는 친근한 주제 아래, 200개 부스에서 국내외 작가 1000여명의 작품 600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데이비드 호크니, 쿠사마 야요이, 이우환, 전광영 같은 거장들의 작품은 물론, 배우에서 화가로 변신한 박신양 작가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지난 5월, 한국조폐공사 성창훈(사진 왼쪽) 사장과 박신양 작가가 미술품 브랜드 보호를 위한 보안인쇄 계약을 체결했다. [조폐공사 제공]
특히 인상적인 것은 참여 갤러리 중 40%가 인천 지역 갤러리라는 점이다. 지역 미술 생태계 활성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엿보인다. 지난해 이 행사에는 6만5000명이 방문했고, 거래액은 100억원을 넘어섰다. 올해는 7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예상되며, 지역 경제에도 상당한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이번 인천아트쇼에는 특별한 손님이 있다. 바로 한국조폐공사다. 돈을 만드는 기관이 미술 전시회에 부스를 운영한다는 사실이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매우 의미 있는 만남이다. 조폐공사는 조직위원회와 ‘문화예술 분야 위변조 방지 기술’ 업무협약을 맺고, 화폐 제조로 축적한 첨단 보안기술을 예술품 보호에 적용하는 방안을 선보인 것이다. ‘가짜 없는 세상’을 꿈꾸는 조폐공사의 비전과, 위작이라는 고질병을 치유하고 싶은 미술계의 갈망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조폐공사가 이번 아트쇼의 핵심으로 제시하는 기술은 ‘AI 기반 디지털 워터마크’다. 디지털 워터마크란 이미지에 창작자 정보나 브랜드 정보를 눈에 보이지 않게 새겨넣고, 이를 탐지해 정품 여부를 확인하는 기술이다. 마치 화폐에 보이지 않는 보안 장치를 넣듯, 작품 이미지에도 암호화된 패턴을 삽입하는 것이다.
조폐공사 기술연구원은 여기에 AI를 접목했다. 이미지 특성을 분석해 정보를 숨기는 ‘생성 모델’과, 훼손된 이미지에서도 정확히 정보를 읽어내는 ‘탐지 모델’을 각각 개발한 것이다. 원본 이미지의 품질은 거의 손상되지 않으면서도, 전용 앱으로 스캔하면 실시간으로 정품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디지털 이미지는 물론 인쇄물에도 적용 가능해 확장성도 뛰어나다.
이 기술이 미술계에서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신뢰성 확보다. 진위 논란으로 얼룩진 미술 시장에 공정하고 투명한 질서를 세울 기술적 대안이 마련된 것이다. 둘째, 창작자와 소비자를 동시에 보호한다. 창작자는 저작권을, 소비자는 정품에 대한 확신을, 브랜드는 시장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실제 적용 사례도 벌써 나왔다. 조폐공사는 박신양 작가와 국내 최초로 미술품 브랜드 보호 계약을 맺고, 그의 작품과 보증서, 엽서에 워터마크 기술을 적용했다. 이번 인천아트쇼에서 박신양 작가는 이 기술이 적용된 판화 작품을 처음으로 선보인 것이다. AI 기반 디지털 워터마크가 실제 미술품에 적용되어 대중 앞에 나서는 첫 순간이다.
화폐보안기술인 보안잉크를 적용한 홍빛나 작가의 작품 (blooming for 90.9×72.7cm Oil on canvas 2025) [조폐공사 제공]
디지털 워터마크는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된 작품에만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조폐공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캔버스에 직접 그린 원작에도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보안 기술을 연구 중이다. 이번 아트쇼에서는 형광 유화물감을 활용한 보안잉크, 비가시 QR코드가 인쇄된 캔버스, 특수물질이 함유된 보안라벨, 나노 구조로 구현한 광결정 필름 등 다채로운 솔루션을 공개한다. 화폐 제조로 다져진 기술력을 예술품 보호로 확장하는 의미 있는 실험이다.
미술 시장은 이제 막 가능성을 펼쳐가고 있다. 하지만 위작이라는 약한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그 성장의 기반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조폐공사의 인천아트쇼 참가는 단순한 기술 홍보가 아니다. 오랜 시간 축적해온 보안 기술로 건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미술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첨단 기술이 예술이라는 아름다운 가치와 만날 때, 우리는 비로소 ‘가짜 없는 세상’을 꿈꿀 수 있다. 2025 인천아트쇼가 그 꿈을 향한 중요한 첫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진품의 가치를 지켜내는 일, 그것은 곧 예술과 창작자를 존중하는 문화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우진구 한국조폐공사 화폐박물관장
조폐공사, AI 워터마크로 미술품 진위 검증
요즘 미술관과 갤러리는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다. 과거 소수 특권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미술품이 이제는 우리 삶 속으로 성큼 들어왔다. 집 거실 한쪽 벽을 장식할 그림 한 점을 고르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간한 ‘미술시장조사 2024’에 따르면 국내 미술 시장 규모는 연간 약 6900억원, 거래 작품 수만 5만건에 달한다. 미술은 이제 문화 콘텐츠이자 투자 자산으로서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눈부신 성장세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바로 위작 문제다.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사건, 이우환 화백의 작품 진위 논란까지, 거장들의 작품조차 위작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위작은 단순히 작가의 명예를 훼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선의로 작품을 구매한 이들에게 금전적·정신적 상처를 남기고, 무엇보다 미술 시장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정부가 ‘미술진흥법’을 통해 진품증명서 제공을 의무화했지만, 종이 한 장으로 된 증명서는 위조와 변조에 여전히 취약하다. 법과 규제만으로는 교묘하게 진화하는 위작 유통을 완전히 막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술의 역할이 주목받기 시작한다. 화폐를 만들며 쌓아온 보안 기술이 미술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올해로 5회째를 맞는 인천아트쇼가 지난 11월 20일부터 오늘까지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리고 있다. “우리도 그림 하나 걸까요”라는 친근한 주제 아래, 200개 부스에서 국내외 작가 1000여명의 작품 600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데이비드 호크니, 쿠사마 야요이, 이우환, 전광영 같은 거장들의 작품은 물론, 배우에서 화가로 변신한 박신양 작가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참여 갤러리 중 40%가 인천 지역 갤러리라는 점이다. 지역 미술 생태계 활성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엿보인다. 지난해 이 행사에는 6만5000명이 방문했고, 거래액은 100억원을 넘어섰다. 올해는 7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예상되며, 지역 경제에도 상당한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이번 인천아트쇼에는 특별한 손님이 있다. 바로 한국조폐공사다. 돈을 만드는 기관이 미술 전시회에 부스를 운영한다는 사실이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매우 의미 있는 만남이다. 조폐공사는 조직위원회와 ‘문화예술 분야 위변조 방지 기술’ 업무협약을 맺고, 화폐 제조로 축적한 첨단 보안기술을 예술품 보호에 적용하는 방안을 선보인 것이다. ‘가짜 없는 세상’을 꿈꾸는 조폐공사의 비전과, 위작이라는 고질병을 치유하고 싶은 미술계의 갈망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조폐공사가 이번 아트쇼의 핵심으로 제시하는 기술은 ‘AI 기반 디지털 워터마크’다. 디지털 워터마크란 이미지에 창작자 정보나 브랜드 정보를 눈에 보이지 않게 새겨넣고, 이를 탐지해 정품 여부를 확인하는 기술이다. 마치 화폐에 보이지 않는 보안 장치를 넣듯, 작품 이미지에도 암호화된 패턴을 삽입하는 것이다.
조폐공사 기술연구원은 여기에 AI를 접목했다. 이미지 특성을 분석해 정보를 숨기는 ‘생성 모델’과, 훼손된 이미지에서도 정확히 정보를 읽어내는 ‘탐지 모델’을 각각 개발한 것이다. 원본 이미지의 품질은 거의 손상되지 않으면서도, 전용 앱으로 스캔하면 실시간으로 정품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디지털 이미지는 물론 인쇄물에도 적용 가능해 확장성도 뛰어나다.
이 기술이 미술계에서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신뢰성 확보다. 진위 논란으로 얼룩진 미술 시장에 공정하고 투명한 질서를 세울 기술적 대안이 마련된 것이다. 둘째, 창작자와 소비자를 동시에 보호한다. 창작자는 저작권을, 소비자는 정품에 대한 확신을, 브랜드는 시장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실제 적용 사례도 벌써 나왔다. 조폐공사는 박신양 작가와 국내 최초로 미술품 브랜드 보호 계약을 맺고, 그의 작품과 보증서, 엽서에 워터마크 기술을 적용했다. 이번 인천아트쇼에서 박신양 작가는 이 기술이 적용된 판화 작품을 처음으로 선보인 것이다. AI 기반 디지털 워터마크가 실제 미술품에 적용되어 대중 앞에 나서는 첫 순간이다.
디지털 워터마크는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된 작품에만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조폐공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캔버스에 직접 그린 원작에도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보안 기술을 연구 중이다. 이번 아트쇼에서는 형광 유화물감을 활용한 보안잉크, 비가시 QR코드가 인쇄된 캔버스, 특수물질이 함유된 보안라벨, 나노 구조로 구현한 광결정 필름 등 다채로운 솔루션을 공개한다. 화폐 제조로 다져진 기술력을 예술품 보호로 확장하는 의미 있는 실험이다.
미술 시장은 이제 막 가능성을 펼쳐가고 있다. 하지만 위작이라는 약한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그 성장의 기반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조폐공사의 인천아트쇼 참가는 단순한 기술 홍보가 아니다. 오랜 시간 축적해온 보안 기술로 건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미술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첨단 기술이 예술이라는 아름다운 가치와 만날 때, 우리는 비로소 ‘가짜 없는 세상’을 꿈꿀 수 있다. 2025 인천아트쇼가 그 꿈을 향한 중요한 첫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진품의 가치를 지켜내는 일, 그것은 곧 예술과 창작자를 존중하는 문화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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