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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국제석유전시회 및 컨퍼런스(ADIPEC)에서 참관객들이 '스타게이트 UAE' 데이터센터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석유의 대체재로 인공지능(AI) 산업을 택한 중동이 빠르게 AI 관련 인프라를 확충하면서, 미국과 중국에 이은 AI 3강에 진입하려는 야심을 보이고 있다. 중동의 두 맹주인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는 ‘컴퓨팅 능력은 새로운 석유’라는 인식 아래 AI를 장기적인 국가 미래 산업으로 점찍었다. 석유·가스 수익으로 얻은 막대한 자금과 저렴한 에너지 비용을 토대로 빅테크의 AI 데이터센터를 유치하고, 이를 토대로 자신들만의 AI 생태계를 구축하고 나선 것이다. 시장조사 업체 IMAEC 그룹에 따르면, 2024년 46억달러(약 6조7500억원)이던 중동 AI 시장 규모는 2033년 1500억달러로 급증할 전망이다.

◇美 빅테크와 잇단 빅딜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UAE에 152억달러 AI 투자를 발표하며 200MW(메가와트)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구축한다고 밝혔다. 2023년부터 올해까지 UAE에 투자해온 금액 73억달러에 더해, 2029년까지 79억달러 이상 더 투자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MS의 투자는 엔비디아 칩을 UAE에 공급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MS는 바이든 정부 때 A100·H100 등 엔비디아 AI 가속기 2만1500개를 공급했는데, 트럼프 정부 들어서도 처음으로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출 허가를 받아 추가로 6만400개 분량을 공급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수출에는 엔비디아의 최신 AI 칩인 GB300도 공급된다.

UAE는 오픈 AI와 오라클 등이 추진하는 초대형 AI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에도 참여한다. UAE에 들어서는 데이터센터는 26㎢ 규모, 약 5GW(기가와트)급으로 원전 5개 분량 전력이 소모된다. 잇따른 투자 유치로 AI 수요를 담당할 GPU와 데이터센터를 모두 확보하는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UAE로부터 10년간 1조 400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받고, 연 50만개 엔비디아 GPU 수출을 승인했다. 이 중 80%는 UAE에서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미국 기업에, 20%는 UAE AI 기업인 G42 등에 공급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AI 강국으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다. 사우디는 국영 AI 기업인 ‘휴메인’을 지난 5월 세웠다.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직접 의장으로 취임했으며, 국부펀드(PIF)가 자금을 지원한다. 휴메인은 엔비디아, AMD, AWS 등 주요 AI 파트너와 협력해 2034년까지 전국에 최대 6GW 규모의 데이터 센터 용량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또 지난달 말에는 세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인 블랙스톤과 30억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 구축 계약을 발표했다. 외국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400억달러 펀드를 조성해 AI, 반도체, 데이터센터 등에 투자하고 있다.

중동 국가들은 자체 AI 모델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UAE는 이미 중국 알리바바의 오픈소스 모델인 큐원2.5를 기반으로 한 ‘K2 싱크’ 모델을 개발해 주목받았다. 매개변수가 320억개에 불과한데, 수학·코딩·과학 등 성능은 매개변수가 수천억 개가 넘어가는 오픈AI나 딥시크 모델과 비슷하게 나왔다. 사우디 역시 자체 AI 기반 운영 체제(OS)인 ‘휴메인 원’을 개발해 배포하고 있다.

◇한국과 경쟁?

한국 정부와 기업은 최근 엔비디아에서 2030년까지 고성능 AI 칩 26만장 이상을 공급받기로 하면서, AI 3강에 올라설 밑거름을 확보했다. 한국이 보유하게 될 첨단 GPU는 30만장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다. 한국은 반도체 분야 경쟁력과 함께, IT 기업들이 보유한 자체 AI 연구·개발(R&D) 능력을 갖췄다. 이번 GPU 확보 역시 제조업 전 분야에 AI를 적용한 AI 팩토리와 자체 AI 개발에 방점이 찍혔다.

반면 중동은 막강한 오일머니를 무기로 AI 인프라를 먼저 구축하고 이후 AI 생태계를 유치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오일머니를 앞세워 각종 빅테크의 인프라를 유치하고, 그 위에 스타트업·대학·연구기관을 불러오겠다는 것이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중동 국가들은 국가 주도의 자본 집적적인 투자를 통해 부족한 기술력을 메우려 한다”며 “최근 AI 경쟁의 가장 큰 병목으로 연산 능력 부족이 지목되는 만큼, AI 3대 강국을 노리는 한국 입장에서 중동의 압도적인 규모의 데이터센터 확충은 마냥 무시하기 어렵다”고 했다.

다만 중동의 AI 인프라 확장 과정에 미·중 갈등은 변수다. 미국 공화당은 트럼프 행정부가 UAE에 칩 투자를 하는 것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UAE를 통해 엔비디아의 최신 AI 칩이 중국으로 우회 공급된다는 것이다. 중동이 글로벌 빅테크와 협력을 확대하고 있지만, 미국 행정부의 수출 규제 기조와 지정학적 판단에 따라 첨단 AI 칩 조달이 제약될 가능성은 남아 있는 것이다. 엔비디아 칩의 UAE 수출은 지난 5월 발표됐지만, 실제로 진행되기까지는 5~6개월이 소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