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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희 한국자살예방협회 전문 자살예방교육 강사가 지난해 10월 열린 춘천마라톤 42.195㎞ 풀코스를 달리다 두 팔을 들어 올리고 있다. 소성희 강사 제공
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소성희 한국자살예방협회 자살예방교육 전문 강사(60)는 지난해 마라톤 42.195km 풀코스를 완주했다. 2020년 초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만난 서울 여의도고 동문 선배 덕분이다. 한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부터 대학까지는 물론이고, ‘스포츠 천국’ 뉴질랜드에서 공부하고 직장 잡아 사는 동안에도 운동이라는 것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그였다. 한마디로 천지개벽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부터는 여의도고교 동문 마라톤클럽 ‘너마클’의 회장까지 맡고 있다.

“뉴질랜드에 있을 때 한번은 여의도고 6년 선배님이 사모님과 함께 온 거예요. 딸을 뉴질랜드로 시집보내고 약 한 달 머물게 됐죠. 제가 두 분이 심심하실까 봐 근처 산으로 트레킹을 함께 다녔어요. 그게 인연이 돼 평생 해보지 않은 마라톤에 입문하게 됐어요.”

소 강사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자 그 선배가 함께 달리자고 한 것이다. 그 선배는 너마클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었다. 너마클은 일요일 새벽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함께 운동하고, 전국 대회를 정해서 출전하는 모임이다. 소 강사는 “여름엔 오전 6시 30분, 겨울엔 오전 7시에 모여 달린다. 모임 장소까지 가려면 늦어도 오전 5시나 5시 30분에 일어나야 한다. 그동안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고민이 됐다”고 했다.

2020년 여름 마음을 다잡고 너마클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해 초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돼 너마클 전체 모임을 하지 못하고 3, 4명 소그룹 훈련을 했다. 당시는 실내 기준으로 4명 이상 모이지 못할 때였다. 야외는 그보다 많은 인원이 모여도 됐지만 주변 사람들의 눈치 때문에 소그룹으로 달렸다. 경기 성남시 분당에 사는 선배들과 탄천을 달렸다.

“전 열심히 뛰는 스타일이 아니었죠. 다른 회원들은 날씬했는데 전 살이 잘 빠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2021년 여름 매일 빠른 속도로 10km씩 3개월 걸었죠. 그때 체중이 많이 빠졌고, 이후 운동도 제대로 할 수 있었죠. 그리고 그해 11월 언택트로 열린 손기정평화마라톤에서 선배의 페이스메이커 속에 하프코스를 2시간 30분에 완주했죠. 그제야 마라톤의 맛을 좀 알게 됐습니다.”

하프코스를 완주한 뒤 어깨와 발, 허벅지 등이 아파 규칙적으로 달릴 수 없었다. 하지만 “너마클 선후배들의 응원 덕분에 열심히 참여할 수 있었다”고 했다. 모이는 인원수 제한이 완화된 2023년부터 너마클 전체 모임에서 본격적으로 달렸다. 코로나19 여파로 열리지 않던 대회들도 열렸다. 하프코스를 주로 달리다 지난해 10월 춘천마라톤에서 풀코스를 처음 완주했다.

“지난해 초 어머니께서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연세가 89세인지라 재활에 5개월 정도 걸렸죠. 그때 어머니 간호하러 병원을 오가다 보니 규칙적으로 달릴 수 없었죠. 당시 메이저 대회 참가 접수가 쉽지 않던 때였는데 운 좋게 춘천마라톤 풀코스에는 참가할 수 있었죠. 8월쯤부터 제대로 훈련할 수 있었는데 10km도 버거운 몸 상태가 돼 있더군요. 더 열심히 훈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 강사는 선배들과 함께 체계적으로 훈련했다. 주중 2, 3회 10km씩 달렸다. 그는 “선배님 조언에 따라 하루 10km를 달리면 다음 날 쉬었다”고 했다. 주말엔 하프, 28km까지 달렸다. 풀코스를 완주하려면 대회 전에 30km 이상 달리는 LSD(Long Slow Distance) 훈련을 최소 2회 이상 해야 한다. 오르막이 많은 춘천마라톤 코스를 감안해 언덕 훈련도 했다. 소 강사는 5시간 조금 넘어 완주했다.

“제가 풀코스를 완주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죠. 선배님들과 얘기하며 편안하게 달렸어요. 30km 넘어 발목이 좋지 않았지만 스프레이 파스 뿌려가며 달렸죠. 사람들이 제가 달리기를 시작한 뒤 에너지가 넘친다고 해요. 달릴수록 힘이 빠질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달릴수록 힘이 생겨요. 그래서 삶이 더 활기차졌어요.”

소 강사는 16일 열린 손기정평화마라톤에서 두 번째 풀코스 완주에 도전하려고 했지만 하프코스만 2시간 25분에 달렸다. 그는 “얼마 전 딸 결혼시키느라 훈련을 하지 않아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독감까지 왔다. 역시 마라톤은 정직하다. 하지만 무리하지 않아야 오래 달릴 수 있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