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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6세에 호암상 과학상 최연소 수상
23년 만에 삼성 미래기술 연구개발 선봉에
서울대 화학과 수석 입학·졸업 후 미국행
대학 교수서 삼성SAIT 원장 직행 두 번째
인간 뇌 구현 미래 반도체 ‘뉴로모픽 칩’ 연구


삼성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의 원장으로 선임된 박홍근 하버드대학교 교수. [삼성전자 제공]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삼성전자의 미래 성장을 뒷받침하는 선행 기술 연구조직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의 새 수장에 선임된 박홍근 하버드대학교 교수는 지난 2003년 이건희 선대회장 시절 호암재단으로부터 호암상 과학상을 받으며 삼성과 첫 인연을 맺었다.

1967년생인 그는 당시 불과 36세의 나이에 최연소 호암상 과학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며 주목을 받았다. 당시 박 교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비밀을 탐구하는 데 일생을 바칠 것”이라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로부터 23년이 흘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부름을 받고 삼성전자 사장으로 영입돼 연구개발(R&D) 사령탑에 오르게 됐다. 이재용 회장이 줄곧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한 만큼 박 교수가 SAIT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삶도 미래 신기술 연구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서울 출생인 박 교수는 서울대 화학과에 수석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한 국내파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4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고, 1999년 32세에 하버드대 화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그에게는 ‘한국인 최초의 하버드대 종신교수’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세계 최초로 분자 하나로 트랜지스터를 만들어 ‘분자전자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인물로 평가된다.

2023년 호암재단이 개최한 호암상 시상식에서 과학상을 받은 박홍근(오른쪽 두 번째) 하버드대학교 교수. [호암재단 제공]


삼성의 SAIT 원장직은 그동안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이나 내부 사장급 이상 인사가 겸임해왔던 자리다. 권오현 회장, 김기남 회장, 진교영 사장, 경계현 사장, 황성우 사장 등이 거쳐갔으며 전영현 부회장(DS부문장)이 작년 12월부터 올해까지 SAIT 원장을 겸임해왔다.

외부 인사가 곧바로 SAIT 원장을 맡은 것은 1995년 임관 미국 아이오와대 교수가 최초였다. 박 교수는 대학 강단에서 SAIT 원장으로 직행하는 두 번째 사례가 된다. 30년 만의 외부 영입인 만큼 이례적인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의 연구조직은 세 단계로 나뉜다. 각 사업부 개발팀이 1~2년 안에 시장에 선보일 상품화 기술을 개발하고, 각 부문 연구소가 3~5년 후 유망할 중장기 기술 개발을 맡는다.

SAIT는 10년 후 미래를 내다보고 삼성전자의 새로운 성장엔진이 될 수 있는 원천기술을 선행 개발하고 있다.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유망 성장분야의 연구개발 방향을 제시하며 반도체·배터리·디스플레이 사업의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을 활용해 새로운 트랜지스터 구조를 개발하고, 카드뮴 없는 퀀텀닷 기술을 선보인 것도 SAIT였다.

삼성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의 원장으로 선임된 박홍근 하버드대학교 교수. [호암재단]


이재용 회장이 이번에 SAIT 원장직을 외부 인사에게 맡긴 것은 삼성 R&D 조직의 혁신 강도를 높여 초격차를 실현할 미래 먹거리 발굴에 힘을 싣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 회장은 SAIT에 자주 방문해 기술인재를 격려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2018년 9월 처음 SAIT를 찾아 기술전략회의를 주재했고, 지난해 3월 SAIT 직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선행기술 확보는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강조한 바 있다.

글로벌 석학인 박 교수 영입을 계기로 SAIT가 전 세계 AI 전문가들과의 협력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박 교수 본인도 지난 2021년 함돈희 SAIT 펠로우 겸 하버드대 교수, 황성우 삼성SDS 사장, 김기남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과 함께 논문을 집필하며 삼성과 교류해왔다. 당시 차세대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술인 ‘뉴로모픽’ 반도체의 비전을 제시한 이 논문은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 일렉트로닉스’에 실렸다.

뉴로모픽 반도체는 사람의 뇌 신경망에서 영감을 받거나 또는 직접 모방하려는 반도체로, 인지·추론 등 뇌의 고차원 기능까지 재현하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한다.

삼성전자는 이번 박 교수 발탁을 계기로 “양자컴퓨팅, 뉴로모픽 반도체 등 미래 디바이스 연구를 주도할 예정”이라고 밝히며 “AI 시대 기회 선점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 교수는 내년 1월 1일부터 삼성전자 SAIT 원장(사장)으로 정식 근무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