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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밤에도 남아 있는 '열섬 잔향'의 정체예전엔 여름이 지나면 열섬도 끝났다. 하지만 도시의 구조는 기억력이 좋다. 유리·철근·아스팔트는 낮의 열을 품고 밤에 내놓는다. 가을이 깊어도, 그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도시 숲은 그 열을 흡수하고, 쿨루프(Cool Roof)는 하늘빛을 되비추며, 미스트로드(Mist Road)는 땅의 온기를 식힌다. 계절은 바뀌어도, 도시는 여전히 여름을 기억한다.

여름이 지나도 유리·철근·아스팔트를 품은 도시는 열을 놓지 않는다. 계절은 바뀌어도, 도시는 여전히 여름을 기억한다. 지난 여름 서울 광화문광장을 시민들이 걷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늦가을에도 이어지는 열의 잔향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서울의 평균기온은 9.1℃로 평년(7.5℃)보다 1.6℃ 높았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기상청 기상자료개방 포털에 따르면 밤 10시 기준 지난 18일 서울 종로는 2.2℃, 교외인 경기도 양평은 0℃였다. 서울 도심이 2.2℃ 더 따뜻했다. 다음 날인 19일도 서울 종로 2.7℃, 경기 양평 0℃로 도심의 기온이 더 높았다. 이 '상대 온도 차'가 바로 도시열섬(Urban Heat Island·UHI)의 흔적이다.

도시열섬은 여름철 폭염 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미국지구물리연합(AGU)이 전 세계 주요 도시를 대상으로 수행한 '도시 표면 열섬의 시간변화 분석(Time Evolution of the Surface Urban Heat Island)' 연구에 따르면, 주요 도시의 표면온도 차는 여름에 평균 2~4℃, 풍속이 약하고 구름이 적은 가을·겨울 밤에도 1~2℃의 온도 차가 꾸준히 유지된다. 열섬은 계절에 따라 강도가 달라질 뿐 연중 작동하는 현상이라는 의미다.

이 연구는 또 도시의 열적 관성(thermal inertia)을 분석했다. 서울·도쿄·뉴욕처럼 토양이나 수면이 아닌, 인공 구조물로 덮인 '인공 피복률'이 높은 대도시는 야간 냉각 속도가 교외보다 20~40% 느린 것으로 분석했다. 결국 "도시는 폭염이 지나도 쉽게 식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계절형 열섬', 모델이 밝혀낸 겨울의 잔열

김규랑 국립기상과학원(NIMS) 기상응용연구부 박사는 도시 기상 수치모델을 이용해 서울의 사계절 열섬을 분석한 대표 연구자다. 그는 "도시열섬은 풍속, 운량, 지표 피복률이 결합해 나타나는 복합 현상"이라며 "서울의 경우 겨울철에도 도심이 교외보다 평균 1~1.5℃ 따뜻하다"고 설명했다.

그가 2011~2013년 수행한 도시기상장 수치모델링(WRF-LDAPS 기반) 연구에서는 낮 동안 흡수된 열이 건물 외피와 도로 면에 저장됐다가 밤새 복사열 형태로 천천히 방출되는 '야간 잔열 패턴'이 확인됐다. 특히 구름이 적고 풍속이 초속 1.5m 이하로 떨어질 때 냉각률이 교외보다 약 30% 느려졌다.

김 박사는 "이는 단순한 체감 온도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기상장을 변형시켜 안개, 대기 정체, 미세먼지 농도에도 영향을 준다"며 "장기적으로는 도시열섬을 반영한 사계절형 예측 모델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재 기상청과 국립기상과학원은 도시 모수화(Urban Parameterization)가 포함된 국가 단위 지역 맞춤형 예보모델(LDAPS) 개선을 추진 중이다. 향후 이 모델이 완성되면, 여름 폭염뿐 아니라 겨울철 잔열까지 고려한 '도시 맞춤형 예보'도 가능할 전망이다.

미래 도시, 계절을 넘어 뜨거워진다

중국 허난성 정저우(鄭州)를 대상으로 국제학술지 MDPI(2024)에 게시된 시뮬레이션 연구에 따르면, 2030~2060년 정저우에서는 도시열섬 변화가 예측됐다. 2030년대부터 가을·겨울의 야간 UHI 강도가 급격히 증가하고, 2050년 전후 정점을 찍을 것으로 전망됐다.

그 원인은 단순한 기온 상승이 아니다. 난방·교통·산업단지의 열 방출, 고밀도 건축 등이 결합하면서 도시의 '겨울 열섬'이 강화되는 양상이 관찰됐다. 기후변화가 심화될수록 도시는 "따뜻한 도시"가 아니라 "식지 않는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


도시에 남은 잔열, 어떻게 식힐 것인가

서울 시내 17개 도시 숲을 1년간 관측한 국제학술논문(PMC, 2023)에 따르면, 도시 숲이 사계절 내내 주변보다 평균 1~2℃ 낮은 냉각 효과를 보인다. 가을·겨울(10~1월) 야간에도 상업지·도로보다 평균 1.3℃ 낮은 온도가 유지됐다. 잔디형·혼합림형 숲은 늦가을 밤 기준 최대 2~3℃의 온도 저감을 보였다. 서울시는 "도시 숲을 기후 완충지대로 확장해 UHI 완화 인프라로 삼겠다"고 밝혔다.

도심 하부에서는 '미스트로드'가 열을 식힌다. 서울시 도로관리과에 따르면, 미스트로드는 매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지하철 유출 지하수나 재활용수를 이용해 하루 3~5회(특보 시) 도로에 미세분무 형태로 살포된다. 4~5월과 10월은 미세먼지 특보 시에만 탄력적으로 가동한다.

서울시 도로관리과 관계자는 "올해 폭염기에는 시청역 주변 등 일부 구간에서 분사 간격을 1시간으로 단축해 탄력적으로 운영했다"며 "다만 지하수 사용량을 고려해 수량에 맞춰 간격을 조정했다"고 말했다.

10월에는 잦은 비로 미세먼지 특보가 없어 가동되지 않았다. 서울시가 활용 중인 외부 실측에 따르면 미스트로드 운용 결과 여름철 노면온도는 7~9℃, 봄·가을 미세먼지는 12μg/m³ 감소 효과가 있었다.

늦가을의 미스트로드는 이제 폭염 대비를 넘어, 공기질 개선과 잔열 완화까지 담당하는 '사계절형 냉각 장치'로 진화하고 있다.

서울 시청역 부근 도로에서 가동 중인 '미스트로드(쿨링로드)'가 가동되고 있다. 미스트로드는 도로 중앙선에 작은 사각형 모양으로 설치된 물 분사 시설로, 뜨거워진 도로 만 식히는 것이 아니라 미세먼지도 함께 제거도 한다. 간혹 날씨가 선선한 가을에 미스트로드를 가동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연합뉴스 제공대구, 한기 속의 열섬

'대프리카'로 불리기도 하는 대구는 겨울에도 뜨겁다. 김해동 계명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는 "도시열섬은 인공구조물과 폐열, 고층 건물로 인한 풍속 감소로 생기기 때문에 풍속이 매우 강해 환기가 활발한 경우를 제외하면 계절과 관계없이 항상 발달한다"며 "특히 야간이 주간보다, 겨울철이 여름보다 더 강하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바람이 약하면 도심의 고온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정체해 열섬 효과가 커진다"고 설명했다.

대구의 평균 풍속은 부산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분지 지형인 대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환기가 어렵다. 따라서 바람이 약한 겨울철 야간에 도시열섬이 가장 강하게 형성된다.

김 교수는 현실적 대응책으로 "도심의 인공구조물 밀도를 낮추고, 주 풍향대를 따라 고층 건물이 무질서하게 들어서지 않도록 제어해 바람길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식지 않는 도시, 식히는 과학

도시의 열을 되돌리는 기술 중 하나가 '쿨루프(Cool Roof)'다. 지붕에 흰색 고반사 도료를 입혀 태양복사열 흡수를 줄이는 방식이다.

한국연구재단 산하 한국 학술지 인용색인(KCI)에 2022년 등재된 서울 강남구 보건소 공공건물에 적용한 쿨루프 실증 연구에선 지붕 표면온도가 20℃, 실내온도가 3℃ 낮아지는 효과가 관측됐다. 겨울에는 단열 효과가 제한적이지만, 여름과 가을에는 냉방 에너지 절감과 UHI 완화 효과가 뚜렷했다.

겨울이 성큼 다가오면서 날씨는 차가워졌다. 그러나 도시의 공기는 여전히 따뜻하다. 도시가 열을 기억하는 구조체이기 때문이다. 도시 숲은 그 열을 흡수하고, 쿨루프는 빛을 반사하며, 미스트로드는 땅의 열을 식힌다.

폭염은 끝났지만, 도시는 아직 식지 않았다. 그리고 그 뜨거운 도시를 식히는 과학은, 이제 여름만이 아닌, 사계절의 과학이 되었다.